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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성덕동 유적(全州 聖德洞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전주 성덕동 유적, 성곡 유적 | 키워드=[[가락동 유형]], [[짧은 빗금 문양]], [[겹아가리]], [[가락동식 토기]]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종철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성덕동 70-19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성덕동 70-19 일원에 위치한다. 전주시 관내 국도 대체 우회 도로 건설 공사 구간으로서 2004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이곳은 전주시의 북서쪽에 위치하는데, 저평한 구릉이 발달되었으며 그 사이로 곡간 지대가 넓게 펼쳐진 곳이다. 북쪽 인근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만경강이 자리한다. 유적은 해발 30m 내외의 동서로 뻗은 구릉에 입지하며, 능선을 따라 일렬로 집자리 2기가 분포한다. 1호 [[집자리|집자리]]는 장방형, 2호 집자리는 방형이다. 1호는 장축 8.74m, 단축 4.52m로 장단축 비율이 1:2에 해당한다. 바닥 면은 별다른 시설없이 굴착면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바닥 중앙에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 화덕]]을 설치하였다. 이외에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와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2호는 1호보다 능선 아래쪽에서 확인된 집자리로 장축 5.54m, 단축 4.62m를 이룬다. 바닥 면에는 전체적으로 목탄이 확인되어 화재가 발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 면은 기반토를 그대로 활용하였으며, [[화덕자리|화덕 자리]]는 중앙부에서 한 쪽으로 치우쳐 확인되었다. 이외에 한쪽 긴 벽을 따라 [[벽구|벽 도랑(壁溝)]]이 일부 조사되었다. 1호와 2호 집자리에서는 [[곧은목항아리|곧은 목 항아리(直立口緣壺)]], [[깊은바리토기|깊은 바리 토기]], 바닥에 구멍이 뚫린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돌끌|돌끌]], [[그물추|그물추]]가 공통적으로 출토되었다. 이외에 1호에 서는 [[삼각형돌살촉|삼각형 돌살촉]], 편평한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이, 2호에서는 [[가락동식토기|가락동식 토기]] 아가리 조각·미완성 [[돌칼|돌칼]]·[[가락바퀴|가락바퀴]]가 각각 출토되었다. 성덕동 유적은 [[구멍무늬토기|구멍 무늬 토기]]와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 등의 [[역삼동식토기|역삼동식 토기]] 전통이 전혀 확인되지 않으며, 1점에 지나지 않지만 [[겹아가리|겹아가리]]와 [[단사선문|짧은 빗금 문양]]으로 구성된 [[가락동식토기|가락동식 토기]]가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방사성 탄소 연대가 산출되지 않아 분명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청동기 시대 [[가락동유형|가락동 유형]] 단계로 판단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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