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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선암동·신정동 유적(蔚山 仙岩洞·新亭洞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울산 선암동·신정동 유적, 울산 선암동 유적, 울산 야음동 유적 | 키워드=[[집자리]], [[논]], [[민무늬 토기]], [[그물추]], [[가락바퀴]], [[홈자귀]], [[바리 토기]], [[슴베 간 돌검]], [[통슴베 간 돌살촉]], [[조갯날돌도끼]], [[돌대팻날]], [[달도끼]], [[돌창]], [[돌도끼]], [[돌낫]],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 [[흔암리 유형]], [[검단리 유형]] | 시대=청동기 | 삼국시대미상 | 조선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현식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크기=5,100㎡ | 소재지=울산광역시 남구 선암동 717, 산208-13, 신정동 961-3 일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울산광역시 남구 선암동 717, 산208-13, 신정동 961-3 일대에 위치한다. 도로 개설로 2000~2001년 밀양대학교박물관·동의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하여(야음동 유적), Ⅰ지구에서 [[집자리|집자리]] 43기, Ⅰ지구에서 집자리 3기 및 청동기~삼국·조선 시대 [[논|논]], 현대 수로 등이 확인되었다. 이후 울산 해양경찰서 신축으로 울산문화재연구원이 2011년 조사하여(선암동 유적), 집자리 19기 및 조선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유적은 태화강 하류역에서 약 3.5㎞ 남쪽에 위치한 해발 63m 내외의 침식성 저구릉과 소규모의 곡지에 입지한다. [[울산야음동유적|야음동 유적]](선암동 산208-13, 신정동 961-3) Ⅰ지구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에 대형의 장방형, 중·소형의 방형, 장방형이 위치하며, 사면부에는 중·소형의 방형, 장방형이 조성되었다. 같은 형태의 집자리 내에서 규모의 차이가 있다. 방형 1호는 길이 5.86m, 너비 5.07m, 32호는 길이 2.5m, 너비 2.4m, 장방형 27호는 길이 4m, 너비 3.2m, 35호 길이 10.68m, 너비 5.17m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도랑|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이며, 중앙에서 한 쪽으로 치우쳐 1개씩 설치된 예가 많다. 기둥 구멍은 중심 기둥, 보조 기둥, 벽 기둥, 벽 도랑 내 기둥 구멍 홈, 외부 기둥 구멍 등이 있다. 벽 도랑은 벽면을 따라 단순히 도랑을 돌린 것, 도랑 없이 홈 상으로 된 것, 도랑과 홈이 결합된 것, 이중 도랑 등 4종류로 형태와 배치면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시간적인 차이를 반영하지 않는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일부는 사용에 의한 경화면, 불 다짐 처리, 최초 사용 바닥면 위에 흙을 덧발라 이용한 [[첩상|첩상(貼床)]]의 흔적 등도 확인되었다. 집자리 내부의 토층 양상을 통해 벽의 지상 부분인 벽재 바깥에 벽재를 보강해 주는 시설인 [[주제대|주제대(周堤帶)]]의 존재가 상정되며, 일부에서는 개수·개축의 흔적 확인되었다. Ⅱ지구에서는 총 30개의 층이 구분되며, 조선 시대~현대의 논(밭)층(1~18층)은 인위적인 성토를 하거나 주변 구릉 사면부 공급물질을 다스려 논으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전~삼국 시대 층(19~30층)은 층 간의 토성·토색의 변화가 심하며 층의 요철 및 경사도 또한 심하다. 이는 곡지내의 토지 환경적 변화, 즉 주변 사면부 공급 물질, 일시적인 급류성 유수퇴적물 등으로 이루어진 자연 퇴적층의 형성, 곡지 내 습지화 및 습지 기원 퇴적물의 형성, 배수 및 습지기원 퇴적물 이용 논 조성이라는 과정이 반복된 결과로 이해된다. 이를 통해 논농사의 개시·재개와 일시적인 중지가 반복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24층, 29층에 대한 평면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의 논 36면, 청동기~삼국 시대의 논 38면, 삼국 시대의 논 41면 등 총 115면이 확인되었으며 모두 계단식 논이다. 청동기 시대 논 36면은 29층을 평면 조사한 것(직상층인 28층 청동기 시대 논의 저면 형태일 가능성도 있다)으로 흑갈색의 습지 기원 퇴적물을 다스려 논으로 이용하였다. 평면 형태는 곡지 내 미지형 경사를 따라 호상(弧狀) 또는 느슨한 ‘S’자 모양의 세장방형을 이루고 있었다. 논 너비는 30~50㎝로, 40㎝가 가장 많고, 삼국 시대 하층 논에 비해 너비가 좁다. 논면 간의 높이 차이는 1.4~10㎝이다. 논에 서 지름 8~30㎝의 원형의 흔적이 확인되며 이는 지하수 용출 흔적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뚜렷한 경작구 흔적(耕作具痕), 족적(足跡), 작물 재배 흔적(栽培痕)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반습답(半濕畓)~습답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논의 북동쪽 끝에 2기가 위치하는데, 논층보다 2~3개 층이 형성된 이후 조성되었다. 1호는 장방형으로 길이 10.8m, 너비 5m이다. 내부 시설은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 화덕 자리]] 2개가 설치되었고 기둥 구멍은 12주식(柱式)이다. 집자리 의 벽면은 네 벽을 따라 홈을 파고 판재를 수직으로 세웠으며, 이 홈과 연접하여 벽 도랑을 설치하였다. 집자리는 화재로 폐기되어 벽체 시설로 사용된 탄화된 판재가 확인되었다. 2호는 방형으로 길이 3.38m, 너비 3.09m이다. 내부 시설은 벽 도랑, 화덕 자리,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으며, 2호는 배수구와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貯藏穴)]]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I지구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그물추|그물추]], [[가락바퀴|가락바퀴]], 토제품, 석기 및 석재 [[격지|격지(剝片)]], Ⅱ지구에서는 민무늬 토기,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모양(深鉢形)]]이 많고 소형의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손잡이달린깊은바리토기|손잡이(把手) 달린 깊은 바리 토기]],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 등이 소량 출토되었다. 토기 문양으로는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골아가리|골아가리(口脣刻目)]]+[[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골아가리구멍무늬|골아가리 구멍무늬]], [[횡선문|가로선 무늬(橫線文)]], 구멍무늬, 짧은 빗금무늬 등이 있다. 석기류는 홈 자루 및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피홈있는간돌검|피 홈(血溝) 있는 간 돌검]], [[통슴베간돌살촉|통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합인석부|조갯날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긴배모양반달돌칼|긴 배 모양(長舟形) 반달 돌칼]], [[숫돌|숫돌(砥石)]]등이 있다. [[울산선암동유적|선암동 유적]](선암동 717)의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집자리 중 장축 방향이 등고선과 나란한 것은 집자리간 서로 중복 양상을 보인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배수구(排水溝)가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대부분 한쪽 짧은 벽에 치우쳐 있으며, 바닥을 얕게 파서 조성하거나 맨땅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기둥 구멍의 배치 양상은 4·6주식(柱式)와 정형성이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벽 도랑은 네 벽을 다 돌아가는 ‘ㅁ’자 모양은 1기이며, 대부분은 일부만 돌아가는 ‘ㅡ’, ‘ㄴ’, ‘ㄷ’자 모양이다. 집자리 중에는 내부에 돌을 쌓아 놓은 예도 있다. 유물은 토기류 42점, 석기류 24점, 토제품 20점 등 모두 86점이다. 토기 문양은 [[겹아가리|겹아가리(二重口軟)]]+골아가리(口脣刻目)+짧은 빗금(短斜線文)+구멍무늬(孔列文), 겹아가리+짧은 빗금+구멍무늬, 짧은 빗금+구멍무늬, 구멍무늬 등이 확인되었다. 석기는 [[돌창|돌창(石槍)]], 반달 돌칼, [[돌도끼|돌도끼(石斧)]], [[간돌검|간 돌검]], [[돌낫|돌낫(石鎌)]], 숫돌(砥石),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돌창은 슴베식(有莖式)과 없는 것 둘 다 출토되었다. 돌도끼는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기둥모양외날돌자귀|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가 출토되었다. [[돌살촉|돌살촉]]은 모두 슴베가 있는 형식이다. 야음동 유적의 집자리는 화재에 의한 폐기가 다수 확인되어, 원래 유적의 규모는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저구릉에는 집자리, 정상부에는 농경지가 확인되어 주변에 무덤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어 주거, 생산, 묘역을 갖춘 마을로 추정된다. 유적의 시기는 야음동 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Ⅱ-1호 245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500년), 2호 546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585년)로 확인되었다. 토기 양식과 집자리 중복 양상을 통해 골아가리, 구멍무늬, 짧은 빗금 무늬가 복합적으로 확인되는 [[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 단계와, 구멍무늬가 단독으로 확인되는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0년~2001년 || 울산 야음동 유적 || 2001 || 밀양대학교박물관 | 동의대학교박물관 |- | 시굴조사 || 2011년 1월 17일~2011년 2월 7일 || 울산 선암동 유적 || 2011 || 울산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11년 3월 17일~2011년 5월 4일 || 울산 선암동 유적 || 2011 || 울산문화재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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