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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석곡리 고인돌군[宜寧 石谷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이칭별칭=의령 석곡리 고인돌군, 의령 석곡리 지석묘군 | 키워드=[[고인돌]], [[덮개식 고인돌]], [[붉은 간 토기]], [[홈 자루 간 돌검]], [[돌도끼]]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류창환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고인돌 | 크기=9기 | 소재지=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석곡리 110-1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석곡리 110-1에 위치한다. 도로 확·포장 공사에 앞서 1989년 [[고인돌|고인돌]] 9기를 조사하였다. 조사 전 고인돌 7기가 있었으나, 1986년 경지 정리 과정에서 2기가 파괴되었고, 1988년 도로 공사로 [[덮개돌|덮개돌(上石)]]이 도로변으로 이동된 상태였다. 가장 큰 덮개돌은 길이 2.8m, 너비 2.8m, 두께 0.43m이며, 대부분 [[개석식고인돌|덮개식(蓋石式) 고인돌]]이다. 하부 구조는 깬돌(割石)을 깔아 부석 시설(敷石施設)을 만들었다. 무덤방은 돌널형(石棺形), 돌덧널형(石槨形), 구덩형(土壙形) 등 다양하다. 바닥은 판돌(板石)을 깐 것과 자갈을 깐 것으로 나누어진다. 1호는 강돌(川石)로 축조한 돌덧널형으로 길이 1.73m, 너비 0.43m, 깊이 0.6m이다. 3호는 깬돌로 부석 시설을 마련하였고 그 아래 무덤방은 길이 1.86m, 너비 0.45m, 깊이 0.4m의 돌덧널형이다. 바닥은 판돌을 전면에 깔고, 서쪽 긴 벽과 북쪽 짧은 벽은 깬돌로 세로쌓기를 하고 나머지 2벽은 판돌로 세운 뒤, 판돌을 이용하여 [[뚜껑돌|뚜껑돌(蓋石)]]을 덮었다. 5호는 제주도식 고인돌의 형식이다. 유물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돌도끼|돌도끼(石斧)]]가 출토되었다. 간 돌검은 3호 [[무덤방|무덤방(墓室)]] 내부에서 칼 끝을 북쪽 짧은 벽을 향해 나란히 놓여져 출토되었다. 석곡리 고인돌은 현재 원상이 훼손된 상태로 하부 구조는 도로에 묻혀 있고, 덮개돌 1기만이 마을 입구에 놓여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방치되어 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89년 3월 13일~1989년 4월 25일 || 의령 석곡리 지석묘군 || 1990 || 동아대학교박물관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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