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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삼계동 화정 유적(金海 三溪洞花亭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김해 삼계동 화정 유적, 김해 화정 유적 | 키워드=[[고인돌]], [[집자리]], [[붉은 간 토기 항아리]], [[간 돌살촉]], [[원반 모양 석기]], [[바리 토기]], [[둥근 덧띠 토기]], [[민무늬 토기]]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크기=5,940㎡ | 소재지=경상남도 김해시 삼계동 1439-4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남도 김해시 삼계동 1439-4 일원에 위치한다. 김해 북부 지구 택지 개발 조성에 앞서 1997~1998년 조사하여, [[고인돌|고인돌]] 4기, [[집자리|집자리]] 2기, [[돌더미|돌더미(集石)]] 2기가 확인되었다. 분성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작은 구릉의 말단부에 입지한다. 고인돌의 [[묘광|무덤 구덩이(墓壙)]] 1단과 2단 모두 확인되었다. [[뚜껑돌|뚜껑돌]]은 2~3중으로 덮었는데, 가장 잘 남아 있는 1호는 판돌(板石)을 1·2차로 덮고, 그 위에 작은 깬돌(割石)을 판돌 사이에 채워 넣었다. 2·3호는 긴 벽에 3매, 짧은 벽에 1매의 돌을 세워 벽면을 축조하였고, 벽석과 무덤 구덩이 사이는 흙으로 채웠다. 3호는 바닥에 작은 깬돌을 깔았다. 유물은 1호의 최상단 뚜껑돌 사이에서 [[붉은간토기항아리|붉은 간 토기 항아리]] 1점과 바닥면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 1점이 출토되었다. 한 편, 무덤과 조금 떨어져서 길이 1.8m, 너비 1.3m, 높이 0.4m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이 1개가 확인되었다. 덮개돌 아래에는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것은 후대에 이동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위의 무덤은 고인돌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말각 장방형이다. 1호는 [[화덕자리|화덕 자리]] 2개와 [[기둥구멍|기둥 구멍]] 3개가 확인되었으며, [[원반형석기|원반 모양 석기(圓盤形石器)]] 1점이 출토되었다. 2호 절반 정도만 남아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바닥면에서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편이 흩어진 채 출토되었다. 돌더미는 자연경사면 바로 위에 다양한 크기의 돌을 1~2겹 깐 것으로, 원형 혹은 부정형이다. 불탄 흔적은 보이지 않으며 돌 사이에서 [[둥근덧띠토기|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를 비롯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97년 12월 5일~1998년 4월 8일 || 김해화정유적Ⅰ || 2004 || 복천박물관 |- | 발굴조사 || 1999년 2월 23일~1999년 7월 2알 || 김해화정유적Ⅱ || 2009 || 복천박물관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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