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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삼거동 유적(光州 三巨洞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광주 삼거동 유적, 삼거동 고인돌군 | 키워드=[[고인돌]], [[부석유구]], [[돌도끼]]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신경숙 | 김수민 | 성격=고인돌 | 크기=5,772㎡ | 소재지=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산51·산52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산51·산52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완만하게 내려오는 구릉 사면부 및 말단부에 해당한다. 삼거동 고인돌군과 삼거동 유적으로 구분되는데, 삼거동 고인돌군에는 [[고인돌|고인돌]]이 49기가 분포하고 삼거동 유적에서는 고인돌 4기와 부석 유구 2기가 조사되었다. 삼거동 고인돌군(산51 일원)은 구릉 상에 2개 군으로 반경 200m 이내에 49기가 분포한다. [[받침돌|받침돌(支石)]]이 없는 고인돌은 20여 기이며 10여 기는 [[무덤방|무덤방(墓室)]]이 노출되어 있다. [[덮개돌|덮개돌(上石)]]의 형태는 장방형이 일부 있으나 대부분 원형이나 타원형이다. 가군은 23기로 군집 형태는 동서 2열이며 받침돌은 판돌(板石)이나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덮개돌의 장축은 모두 군집 방향과 같은 방향이다. 덮개돌 2기는 길이 1~1.3m로 비교적 두꺼운 편이나 나머지는 얇고 밑 부분이 땅에 밀착되어있다. 나군은 북두칠성 모양으로 위치하며 크기는 모두 작은 편이다. 이 곳에서는 돌을 구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 외부에서 운반하여 고인돌을 만든 것으로 보이고, 칠성마을이라는 이름은 고인돌이 놓인 형태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삼거동 유적(산52 일원)은 빛그린 산업 단지 진입 도로 확장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16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1구역에서 고인돌 4기와 [[부석유구|부석 유구(敷石遺構)]] 2기가 조사되었는데, 삼거동 고인돌군의 북동쪽에 해당한다. 고인돌 4기 가운데 2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후대 경작이나 무덤 조성으로 인해 이동되었거나 파괴되었다. 3호와 4호 고인돌 사이에는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덮개돌|덮개돌(上石)]]이 4~5개 있다. 1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약간 이동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부정형이고 크기는 길이 1.3m, 너비 0.9m, 높이 0.5m이다. 2호 고인돌은 매장 주체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작은 깬돌들이 일정한 형태로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묘역|묘역(墓域)]]으로 추정된다. 3호 고인돌은 덮개돌이 유실된 상태이며 바닥에서 깬돌 6매와 [[구덩이|구덩이]]가 확인되었지만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4호 고인돌은 덮개돌과 [[받침돌|받침돌(支石)]]이 일부 확인되었지만 정확한 형태는 파악하기 어렵다. 부석 유구는 3호 고인돌의 북쪽에 있으며 1호와 2호는 연접해있다. 1호는 평면 원형이며 크기는 길이 6.5m, 너비 4.8m이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2호는 평면 방형이며 크기는 길이 7.6m, 너비 6.5m이다. [[돌도끼|돌도끼(石斧)]]로 추정되는 미완성 [[석기|석기]] 1점이 출토되었다. 삼거동 유적은 지형과 고인돌의 분포 상태로 보아 삼거동 고인돌군과 같은 군집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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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유적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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