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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삼거동 고인돌군[光州 三巨洞支石墓群]}} {{유적정보 | 이칭별칭=광산 삼거동 고인돌군, 덕림동 덕림 고인돌군, 빛그린 산업 단지 조성 부지 내 유적 | 키워드=[[고인돌]], [[둘레 도랑]], [[송국리식 집자리]], [[묘역]], [[간 돌살촉]]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천선행 | 성격=고인돌 | 크기=375,904㎡ | 소재지=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917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917 일원에 위치한다. 빛그린 산업 단지 조성 부지 내 유적의 하나로 빛그린 산업 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2015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영산강 지류인 황룡강의 지천 중 하나인 평림천 변에 위치하는 나지막한 구릉 지대에 위치한다. 구체적으로 해발 53~57m 구릉 정상부와 사면에 입지하는데, 북으로 400m 거리에 [[외치리분산유적|함평 외치리 분산 유적]], 동남쪽 300m 떨어진 곳에 [[덕림동응유유적|덕림동 응유 유적]], 서쪽 600m 떨어진 곳에 [[덕림동을림유적|덕림동 을림 유적]]이 위치한다. 유적에서 청동기 시대 [[도랑|도랑(溝)]], [[구덩이|구덩이]], [[고인돌|고인돌]], 시대 미상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구릉 정상부에 고인돌 15기가 모여 있는데, [[덮개돌|덮개돌(上石)]]은 3기만 확인되고, 나머지는 덮개돌이 없다. 덮개돌이 있는 고인돌 3기(1~3호) 모두 [[묘역|묘역]]이 남아 있다. 그리고 고인돌을 감싸듯이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도랑이 6기 확인되었는데, 구릉 북사면에 3중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다. 1호 고인돌은[[받침돌|받침돌(支石)]] 3개가 타원형으로 잘 다듬어진 덮개돌을 받치고 있고, 2호 고인돌은 받침돌이 [[무덤방|무덤방]] 외곽에 돌려져 장방형에 가까운 덮개돌을 받치고 있다. 무덤방을 축조하고 긴 벽 쪽으로 반달 모양 에 가까운 묘역을 마련하였다. 3호는 덮개돌이 2개로 쪼개어져 있고, 받침돌 2개가 무덤방 위에 놓여져 있다. 무덤방 장축 방향은 대부분 동-서이지만, 남쪽의 11호 고인돌은 남북 방향이다. 무덤방 규모는 가장 작은 11호가 길이 0.98m, 너비 0.33m, 깊이 0.3m이고, 가장 큰 2호는 길이 1.86m, 너비 0.5m, 깊이 0.55m정도이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장방형이나 부정형의 깬돌(割石)을 사용하였다. 벽석 축조 후 짧은 벽 사이에 큰 석재를 걸쳐서 놓고 뚜껑돌 사이의 빈 공간을 막기 위해 좀 더 작은 크기의 석재를 이용하여 놓았다. 무덤방 평면 형태는 대부분 (세)장방형이며, 구조는 [[돌널형무덤방|돌덧널(石槨)형]], [[돌널형무덤방|돌널(石棺)형]], [[구덩형무덤방|구덩(土壙)형]]이 있다. 돌덧널형(1·2·4·6·7·9·15호)은 여러매의 깬돌을 이용하여 여러 단에 걸쳐 벽석을 축조하는데 아래쪽에는 넓은 면을 안쪽으로 향하게 하여 가로로 쌓았다. 돌널형(5·10~12호)은 기본적으로 판돌재로 짧은 벽석 1매와 긴 벽석 여러 매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벽석 위쪽에는 깬돌을 추가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구덩이형(8·13·14호)은 땅을 굴착하여 바로 사용하였는데, 14호는 긴 벽 한 쪽에만 깬돌을 일부 사용하였다. 바닥 시설은 대부분 암반층을 그대로 이용(1·4·5·7·8·12·14호)하였는데 암반 상태에 따라 편평하게 정지한 것도 있지만, 일부는 바닥면이 상당히 고르지 못한 상태이다. 이 외에 바닥석을 깔아 시설한 것(2·6·9호)도 있다. 출토 유물은 2호 고인돌 묘역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 3점, 4호 무덤방에서 간 돌살촉 3점이 출토되었다. 구릉 위쪽에 축조된 1~4호 도랑은 평면 ‘ㄷ’자 모양으로 고인돌을 감싸고 돌아가는 형태이다. 도랑의 규모는 위쪽인 1~4호는 길이 10~30m, 너비 1~3m, 깊이 0.4~0.6m이다. 구릉 아래쪽에 축조된 5·6호는 길이 50~70m, 너비 2~6m, 깊이 0.7~1.4m여서 1~4호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단면도 ‘V’자 모양을 이루며 넓고 깊게 굴착되었다.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고인돌군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단언하기 어렵지만, 기존 고인돌 조사에서 묘역을 보호하고 구획·구별하는 ‘[[주구|둘레 도랑(周溝)]]’이 확인된 예가 있으므로 동일한 성격으로 판단된다. 빛그린 산업 단지 조성 사업 부지 내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무덤 유적은 4개소로 24기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는데, 15기가 군집을 이루는 [[삼거동고인돌군|광주 삼거동 고인돌군]]을 제외하고는 모두 2~5기 내외이다. 영산강 상류지역의 고인돌 대부분이 10기 미만인 소군집인 점이 특징이고, 광주광역시 고인돌군도 대부분이 10기 미만으로 구성된다. 대규모 고인돌이 확인된 삼거동 고인돌군은 영산강 상류 지역에서 고인돌 중심 분포지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고인돌이 밀집 분포하는 구릉의 정상부를 감싸듯 도랑이 둘러싸 묘역이 조성되었다. 묘역화 양상은 청동기 시대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삼거동 고인돌군에 인접해 조사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와 관련될 것으로 판단되고, 그 시기는 기원전 5세기 이후로 볼 수 있다. 한편, 묘역화의 양상은 크게 석재를 활용한 경우와 도랑을 판 경우로 나뉘는데, 덕림동 덕림 고인돌과 유사한 사례는 [[부곡리 고인돌군|고창 부곡리 고인돌군]], [[덕천리유적|창원 덕천리 유적]], [[김해패총|김해 패총]] D구역, [[김해율하리유적|김해 율하]] B지구, [[진동리유적|마산 진동리 유적]], [[청도 신당리 489-3번지 유적|청도 신당리 489-3번지 유적]](Ⅱ구역) 등에서 확인된다. 특히 [[부곡리고인돌군|고창 부곡리 고인돌군]]에서는 20여 기의 고인돌이 구릉을 따라 열을 지어 형성되고, 이중의 도랑이 고인돌을 둘러싼 양상으로 확인되어 [[덕림동덕림고인돌군|덕림동 덕림 고인돌군]]과 가장 유사하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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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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