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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주거 공간(住居空間)}}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주거 공간 | 시대=신석기 시대 | 관련 유적=옥천 대천리 유적 | 키워드=[[신석기 시대 집자리]], [[대천리식 집자리]], [[화덕 자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4 | 집필자=구자진 }} ==설명== [[신석기시대집자리|신석기 시대 집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내부 공간은 취사와 난방, 조명 등의 다목적으로 쓰인 [[화덕자리|화덕]] 시설이었다. 화재의 위험성을 줄이고, 내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주로 [[집자리|집자리]] 중앙에 화덕을 설치하였다. 집자리 내부에서는 수면이나 취사 이외에도 작업, 의례 등 여러 활동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 집자리는 1칸이며, 그 내부에서 구성원의 역할에 따라 공간 분할이 이루어졌다. 또한 집자리 규모에 따라서도 기능의 차이가 있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 화덕 시설의 위치, 기둥 구멍의 배치, 저장 구덩이, 단 시설 등을 통해 집자리 내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였는지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유물이 출토된 양상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였는지를 유추해 낼 수도 있다.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집자리 중 내부 공간 활용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는 ‘[[대천리식집자리|대천리식 집자리]]’이다. [[옥천대천리유적|옥천 대천리 유적]]의 집자리는 크게 생활 공간과 부속 공간으로 나누어지며, 생활 공간은 다시 취사, 난방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작업 공간과 휴식처, 잠자리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거실 공간으로 세분된다. 생활 공간은 약 35㎡, 부속 공간은 약 15㎡로 두 공간의 비율은 약 2.3:1 정도이다. 생활 공간 내에서 작업 공간과 거실 공간의 비율은 약 1:1 정도이다. 이를 통해 대천리 유적 집자리는 계획적인 설계와 측량으로 내부 공간을 분할하여 사용하도록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생활 공간 중 작업 공간에서는 집자리에서 출토된 유물의 약 60% 정도가 확인되었다. 특히 작업 공간의 남벽에 인접한 위치에서는 깨진 부분 없이 완형에 가까운 [[토기|토기]]도 발견되었다. 또한 기형을 판단할 수 있는 토기들은 대부분 중심 기둥과 벽 기둥 사이에 놓여 있었다. 작업 공간에서 출토된 [[석기|석기]]로는 [[돌도끼|돌도끼]]와 [[공이|공이]], [[무늬새기개|무늬 새기개[施文具]]]가 있는데, 모두 집자리의 동쪽 부분에서 출토되었다. 거실 공간에서 출토된 유물의 양은 다른 공간에서 출토된 것에 비해 매우 적다. 출토된 유물도 남·북벽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어 내부 공간은 어느 정도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체 공간에서 출토된 유물의 10% 정도만이 거실 공간에서 출토되었다. 부속 공간에는 대형 [[갈판|갈판]]이 남쪽과 북쪽 벽에 인접하여 각 1개씩 놓여 있었다. 갈판은 모두 불을 맞아 쪼개진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남벽에서 출토된 갈판은 벽면에 기대어져 있었다. 또한 [[빗살무늬토기|빗살무늬 토기]] 조각과 [[갈돌|갈돌]], [[숫돌|숫돌]], 다량의 [[굴지구|굴지구]]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전체 유물의 약 30%에 해당한다. 또한 집자리에서 출토된 토기 중 가장 큰 토기 2점이 부속 공간의 서벽 근처에서 출토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부속 공간에서는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도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의 성격과 저장 구덩이의 존재를 종합하여 볼 때, 부속 공간은 곡물을 가공하거나 갈무리하는 장소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민족지 사례에서는 일반적으로 집자리에서 출입구나 화덕 시설에 가까운 공간을 여성이, 집자리의 안쪽 공간을 남성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작업장은 출입구에서 가까운 부분에, 의례 장소로 추정되는 곳은 집자리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였다. 침실과 생활 공간은 화덕 시설을 중심으로 좌우에 있었다. 유물과 관련하여서는 갈돌이나 갈판, 토기가 출토되는 곳은 여성의 생활 공간, 석기가 많이 출토되는 곳은 남성의 생활 공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집자리 조사와 민족지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집자리 내부 공간은 화덕 시설을 중심으로 하며 작업 공간, 취사 공간, 생활 공간, 거실 공간, 의례 공간으로 분할된 구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500px> File:옥천_대천리_유적_집자리.jpg File:옥천_대천리_유적_집자리_내부_공간_분할_양상.jpg </gallery> ==참고문헌== * 구자진. (2005). 옥천 대천리의 신석기시대 집자리 연구. <i>한국상고사학보, 47</i>, 5-36. https://www.riss.kr/link?id=A76600454 * 구자진. (2010). <i>한국 신석기시대의 집자리와 마을 연구</i>. (박사 학위 논문). 숭실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2885018 * 구자진. (2013). 중서부지역 신석기시대 집자리의 구조와 운용방식. 한국고고학회(편저), <i>주거의 고고학: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자료집</i>(pp.32-48). https://www.riss.kr/link?id=A105556717 * 이상균. (2003). 한반도 신석기시대 주거의 변천과 구조적 양상. <i>고문화, 61</i>, 3-44. https://www.riss.kr/link?id=A10537147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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