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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산본리 유적(金海 山本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김해 산본리 유적, 냉정 유적 | 키워드=[[돌널무덤]], [[붉은 간 토기 항아리]], [[슴베 간 돌살촉]]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고분 | 소재지=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산본리 398-2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산본리 398-2 일원에 위치한다. 김해 진례-주촌간 도로 확장 공사에 앞서 2008년 조사하여,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7기를 확인하였다. 돌널무덤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확인되지 않았다. 매장 주체부는 깬돌(割石)을 이용해 세워 쌓기와 눕혀 쌓기 하였다. 바닥에는 점토를 깔고 그 위에 잔자갈을 한 겹 깐 것(1·2·4·7호), 깬돌을 한 겹 깔고 그 위에 잔자갈을 깐 것(3호), 점토를 깐 것(6호)이 있다. 무덤의 장축은 등고선과 평행한 것(1·4~7호)과 직교하는 것(2·3호)으로 구분된다. 1호의 벽석은 [[묘광|무덤 구덩이(墓壙)]]에 밀착되게 축조되었고, 2호는 무덤 구덩이와 벽석 사이에 흙과 깬돌을 채웠으며, 5호는 무덤 구덩이를 이단으로 굴착되었다. 2·5·8호는 두 겹으로 된 [[뚜껑돌|뚜껑돌(蓋石)]]이 확인되었다. 2호는 매장 주체부 위에 한 매의 판돌(板石)로 된 뚜껑돌이 있고 그 위에 다시 판돌 8매로 덮었다. 5·6호는 판돌에 가까운 깬돌 7매를 놓은 후 그 사이를 깬돌로 채우고 그 위에 중첩되게 깬돌을 덮은 구조이다. 유물은 [[붉은간토기항아리|붉은 간 토기 항아리]]가 짧은 벽 모서리 쪽에서,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이 북쪽 긴 벽 중앙부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특히 5호에는 동쪽 짧은 벽에서 0.25m 떨어져서 길이 0.3m, 너비 0.6m의 판돌에 가까운 깬돌을 칸막이로 세워서 [[껴묻거리|부장품]] 공간을 마련하였다. 이곳은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의 바닥보다 10㎝ 정도 높고, 한 쪽에 치우쳐 붉은 간 토기 항아리가 출토되었는데 공간에 여유가 있어 유기질제 부장품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유적의 시기는 [[송국리단계|송국리 단계]]로 판단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8년 9월 1일~2008년 10월 15일 || 김해 냉정유적·김해 망덕리 고분군 || 2010 || 경남문화재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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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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