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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구석기 시대 좀돌날 몸돌[舊石器時代細石核]}}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구석기 시대 좀돌날 몸돌 | 이칭별칭=세석핵, 세형 몸돌, 세석인핵, 세석인 석핵 | 시대=구석기 시대 | 관련 유적=단양 수양개 유적, 단양 수양개 유적(Ⅰ·Ⅳ지구), 양구 상무룡리 유적, 인제 부평리 유적, 장흥 신북 유적, 진주 집현 유적, 포천 화대리 쉼터 구석기 유적, 포천 중리 용수재울 유적, 홍천 하화계리 유적 | 키워드=[[좀돌날]], [[돌날몸돌]], [[좀돌날 석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3 | 집필자=장용준 }} ==설명== 좀돌날 몸돌은 세석핵(細石核), 세형(細形) 몸돌, 세석인핵(細石刃核), 세석인 석핵(細石刃石核) 등으로 불리는 몸돌의 한 종류로, [[좀돌날|좀돌날]]을 생산하고자 만든 석기다. 좀돌날 몸돌은 좀돌날을 떼어낸 박리흔의 유무와는 상관이 없으며, 돌날몸돌과 더불어 [[후기구석기시대|후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석기 형식이다. 한반도에서는 [[공주석장리유적|공주 석장리 유적]]에서 처음 출토되었으며, 1980년대 [[단양수양개유적|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석기제작장|석기 제작장]]이 확인되면서 좀돌날과 좀돌날 몸돌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좀돌날 몸돌은 이동 생활을 하는 [[수렵활동|수렵]] [[채집활동|채집]] 사회에서 석기 효율성과 경량화에 있어 기술적인 최정점에 있었던 석기다. 좀돌날 석기군의 기원을 5만 년 전에서 4만 년 전 사이의 [[중기구석기시대|중기 구석기]] 또는 후기 구석기 초 시베리아 극동 지역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환동해(環東海) 지역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 초반으로 시기를 확정할 수 있는 좀돌날 출토 유적은 없다. 중국 연구자는 좀돌날 몸돌의 기원을 화북 지역으로 설정하기도 하지만, 그 증거는 부족하다. 좀돌날 기법은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확인되며,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에도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후기 구석기 시대인 28,000cal BC 이후부터 출현하며, [[양양오산리유적|양양 오산리]]와 같은 신석기 유적에서도 출토된다. 좀돌날 몸돌은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며, 대부분이 구석기 시대 층위의 최상부 토양 쐐기 상층에서 출토되지만, 쐐기 포함층에서 출토되기도 한다. 중요 제작지 유적으로는 단양 수양개, [[포천중리용수재울유적|포천 중리 용수재울]], [[전주재경들유적|전주 재경들]], [[산청차탄리유적|산청 차탄리]], [[순천월평유적|순천 월평]], [[장흥신북유적|장흥 신북]], [[대구월성동유적|대구 월성동 유적]] 등이 있으며, 여러 기법으로 사용된 다양한 형태의 좀돌날 몸돌이 출토되고 있다. 좀돌날 몸돌은 [[밑감|밑감]]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세부 기술이 달라진다. 박리 전의 고정 기술, 쐐기 제작 기술, [[눌러떼기|눌러떼기]] 기술 등은 돌날 기법과는 달리 좀돌날 몸돌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적인 기술이다. 상당수 좀돌날 몸돌은 좀돌날을 연속적으로 떼어내고자 밑면을 쐐기 형태로 다듬었다. 좀돌날 몸돌 제작의 첫 단계는 예비 몸체를 만드는 작업이다. 좀돌날 몸돌의 형태는 복잡한 조정 방식에서 단순 조정 방식으로 변화했다. 한 유적에서 여러 기법이 혼재되어 출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상적인 조정 과정은 타면 생성 → 타면 조정, 양면 조정 → 한 면 조정으로 변화하거나 밑감을 제작하며 이미 조정하여 조정하지 않거나 별도의 밑면 조정이 필요 없는 경우 → 밑면 조정을 하는 경우 → 밑면 조정이 필요 없는 경우(어떠한 조정도 하지 않는 경우)로 변화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좀돌날 몸돌은 타면이 평탄하고, 타면의 양변을 직선으로 조정하며, 밑면은 되도록 V자로 다듬는다. 타면은 타면 생성 격지(spall)를 떼는 방식, 미세 조정, 박리면 이용, 자연면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제작한다. 좀돌날 몸돌은 형태를 중심으로 한 분류법과 유적 이름을 딴 분류법이 있다. 형태를 기준으로는 설형(楔形, 밑면 V자), 원추형, 반원추형, 원통형, 주저형(舟底形, 배 모양)으로 나뉜다. 유적 이름을 기준으로는 수양개형(양면 조정 예비 소재, 유베쓰(湧別) 기법), 석장리형(소재의 단면 조정, 격지의 배면 이용), 집현형(타면의 측변을 평행하게 조정, 배 모양 좀돌날 몸돌), 하화계리형(무조정, 자연면이 있는 격지 이용), 상무룡리형(돌날을 예비 소재로 사용), 금성형(밑면 쐐기 조정 없음, 원추형 좀돌날 몸돌), 장흥리형(양면 조정 또는 단면 조정에 타면 모양이 삼각형, 소형 삼각형 좀돌날 몸돌) 등으로 구분한다. 좀돌날 몸돌의 돌감으로는 규질제 암석을 선호했다. 유적에 따라서는 수정과 석영 등도 이용했으나 그 수량은 적다. 돌감은 대체로 현지의 강과 하천 등지에서 수급하였다. 철원 장흥리, 양구 상무룡리, 인제 부평리, 포천 화대리, 중리 용수재울, 늘거리, 대회산리, 남양주 호평동 등에서는 백두산 흑요석을 사용하기도 했다. 몸돌 제작에는 작은 원석이나 격지를 이용했다. 예비 몸체는 타원형과 방형이며, 박리 뒤에 버려진 폐핵(廢核)은 삼각형, 타원형, 방형, 장방형, 제형(사다리꼴), 반월형이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반적으로 옆면이 타원형, 주형(舟形, 배 모양), 삼각형이다. 단면은 공통적으로 역삼각형의 쐐기형이다. 좀돌날 몸돌의 타원형 예비 소재가 쇠퇴한 요인은 예비 소재 제작에 따른 시간 소요, 돌감의 소비량 증가, 기술 습득의 어려움, 석재의 수급 제한 등이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단양_수양개_유적_출토_좀돌날_몸돌_접합_유물(유베쓰_기법).jpg File:인제_부평리유적_출토_좀돌날_몸돌.jpg </gallery> <gallery mode=packed heights=400px> File:한반도_좀돌날_몸돌의_형식분류(오오타니_카오루,_2017).jpg </gallery> ==참고문헌== * 김은정. (2002). <i>전남지역의 좀돌날몸돌 연구: 1990년대 이후의 유물을 중심으로</i>(석사 학위 논문). 조선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8978416 * 서인선. (2015). 석장리유적 돌날과 좀돌날 제작의 기술학적 재검토 –돌감, 제작방법과 떼기기술을 중심으로–. <i>한국구석기학보, 31</i>, 54-83. https://www.riss.kr/link?id=A102716183 * 이기길. (2015). 제주도에서 보고된 좀돌날석기의 연구 –제작기법과 연관된 형태와 크기를 중심으로–. <i>한국구석기학보, 32</i>, 70-99. https://www.riss.kr/link?id=A102716205 * 장용준. (2007). <i>한국 후기구석기의 제작기법과 편년 연구: 석인와 세석인유물상을 중심으로</i>. 학연문화사. https://www.riss.kr/link?id=M11029869 * 大谷 薫. (2016). 한국 세석기제작의 기술 특징과 변화 양상. <i>한국상고사학보, 91</i>, 4-41. https://www.riss.kr/link?id=A104716405 * 大谷 薫. (2019). <i>細石器文化期における石器生産と石材消費 -朝鮮半島と日本列島-</i>(博士學位論文). 明治大學. http://hdl.handle.net/10291/20881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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