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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사월리 유적(山淸 沙月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산청 사월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환호]], [[돌널무덤]], [[도랑]], [[고인돌]], [[삼각 오목 돌살촉]], [[슴베 간 돌살촉]], [[홈자루 간 돌검]], [[배 모양 반달 돌칼]], [[숫돌]], [[가락바퀴]], [[돌낫]], [[돌창]], [[역삼동 문화]], [[흔암리 문화]], [[송국리 문화]]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조현복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4-3, 124-1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4-3, 124-1 일원에 위치한다. 대전-진주 간 고속 도로 공사에 앞서 1996년 부경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하여(사월리 4-3), [[집자리|집자리]]9기, [[구덩이|구덩이]] 10기, [[환호|환호(環濠)]],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2기 및 삼국 시대 유구 다수를 확인하였다. 유적에서 남쪽으로 750m 떨어져 동의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하여(사월리 124-1), 집자리 19기, 구덩이 11기, [[구|도랑(溝)]] 2기, [[고인돌|고인돌]] 1기, 돌널무덤 8기를 비롯하여 삼국 시대 및 고려 시대의 무덤을 확인하였다. 유적은 구릉 끝자락 충적 대지에 입지하며, 동쪽으로 약 500m 떨어져 경호강이 흐르고 있다. 집자리는 구릉 사면에 등고선 방향으로, 무덤은 정상부에 남서-북동 방향으로 3열을 이루고 있다. 집자리는 장방형, 말각 (장)방형, (타)원형이 있으며, 중복 관계를 통해 Ⅰ→Ⅱ→Ⅲ단계의 순으로 변화하였다. Ⅰ단계는 장방형 집자리가 해당되며 내부에 [[화덕자리|화덕 자리]],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도랑|벽 도랑(壁溝)]],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가 있다. 벽 도랑은 벽 쪽에 단면 ‘V’자 모양으로 깊게 파고 안쪽을 얇게 판 2단 구조이며,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화덕자리|무시설식(無施設式)]]이다. Ⅱ단계는 말각 장방형 집자리가 해당되며,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 화덕 자리]]가 설치된 것도 있다. Ⅲ단계는 말각 방형 및 (타)원형 집자리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다. 구덩이는 바닥에 목탄(木炭)과 불탄 흙이 확인된 5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집자리에 딸린 부속 시설로서 저장 구덩이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환호는 북쪽을 중심으로 구릉 사면에서 아랫면을 감싸듯이 집자리군의 절반 정도만 돌려져 있다. 동쪽은 이중(二重)으로 환호가 설치되었다. 동서 길이 58m, 너비 1.8~3m, 총 길이 99.6m이다. 단면 형태는 ‘V’자 모양이며 최대 깊이는 1.1m이다. 서편 환호의 북쪽에는 너비 3.5m의 출입구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다. 환호에서는 대부분의 유물이 편(片)으로 출토되어 의도적인 폐기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와의 중복 관계를 보이는 것으로는 환호가 매몰된 후 축조된 6호 집자리가 있다. 무덤 중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1.9m, 너비 0.94m, 높이 0.39m로 판돌형(板石形) 괴석(塊石)이다. 덮개돌을 중심으로 돌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무덤방은 훼손이 심하다. 돌널무덤은 [[뚜껑돌|뚜껑돌(蓋石)]]이 남아 있는 것이 3기인데, 판돌을 잇대어 덮고 그 사이를 깬돌(割石)로 막았다. Ⅰ단계 집자리에서는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 [[골아가리|골아가리(口脣刻目)]], [[골아가리구멍무늬|골아가리 구멍무늬]], 골아가리+구멍무늬+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겹아가리(二重口緣)+짧은 빗금무늬 등이 새겨진 토기가 출토되었다. 석기는 [[삼각오목돌살촉|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배모양반달돌칼|배 모양(舟形) 반달 돌칼]], [[숫돌|숫돌(砥石)]],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Ⅲ단계 집자리에서는 [[외반구연독모양토기|외반 구연(外反口緣) 독 모양 토기(甕形土器)]]의 출토 빈도수가 증가하며, 석기는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 [[돌낫|돌낫(石鎌)]], 숫돌, [[돌창|돌창(石槍)]] 등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Ⅰ단계는 [[역삼동문화|역삼동]]·[[흔암리문화|흔암리 문화]] 시기로, Ⅲ단계는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시기로 판단된다. 무덤은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등이 출토된 점에서 송국리 문화 시기로 판단된다. 집자리와 무덤이 서로 구역을 달리하여 배치되었고, 그 사이에 있는 도랑이 경계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유적은 한 마을 내에서 생(生)의 영역과 사(死)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96년 10월 12일~1996년 12월 10일 || 산청 사월리 환호 유적 || 1998 || 부경대학교박물관 |- | 발굴조사 || 1996년 3월 21일~1996년 8월 31일 || 산청 사월리 유적 || 1999 || 동의대학교박물관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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