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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사라리 유적(慶州 舍羅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경주 사라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화덕 자리]], [[벽 도랑]], [[기둥 구멍]],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달도끼]], [[골아가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역삼동식 토기]], [[가락동식 토기]] | 시대=청동기 | 원삼국 | 삼국시대미상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하진호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사라리 570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사라리 570에 위치한다. 공장 신축에 앞서 1995~1996년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5기 및 [[원삼국시대|원삼국]]~[[삼국시대|삼국 시대]]의 다양한 무덤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경북 내륙과 경주 분지를 연결하는 지역으로, 영천·경산·경주 지역을 잇는 주요한 교통로에 위치한다. 북쪽 인내산의 능선에서 뻗어 나온 잔골과 진밭들 사이에 위치한 구릉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5기가 등 간격을 유지하고 장축 방향이 모두 등고선과 일치하고 있어 동일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는 장방형이며, 면적은 25.2~32.9㎡인 중형이다. 1호는 길이 7.75m, 너비 4.25m, 깊이 0.59m, 2호는 길이 10m, 너비 1.93m, 깊이 0.13m, 3호는 길이 8.83m, 너비 4.23m, 깊이 0.57m, 4호는 길이 6.47m, 너비 3.89m, 깊이 0.46m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벽도랑|벽 도랑(壁溝)]],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부정형의 얕은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으로 대부분 1기를 갖추고 있으나, 1호는 2기가 있다. 벽 도랑은 집자리 내부 벽면을 따라 ‘ㄷ’자 또는 ‘ㄱ’자 모양으로 모두 경사면 높은 쪽에 만들어져 있다. 1호는 벽 도랑 상단의 벽면에는 불탄 두께 1㎝, 너비 10㎝의 판재(板材)가 남아 있어 판재로 된 벽체 시설로 판단된다. 바닥은 점토로 다지거나, 별다른 시설 없이 바닥면을 이용하였다. 출토 유물은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굽달린작은항아리|굽 달린 작은 항아리(臺附小壺)]],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도끼|돌도끼(石斧)]],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숫돌|숫돌(砥石)]],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 있다. 항아리 모양 토기는 [[골아가리|골아가리(口脣刻目)]]만 있으며, 바리 토기는 [[골아가리구멍무늬|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구멍무늬짧은빗금무늬|구멍무늬 짧은 빗금무늬(孔列短斜線文)]], [[골아가리구멍무늬짧은빗금무늬|골아가리 구멍무늬 짧은 빗금무늬]] 등의 문양이 조합되어 나타난다. 토기의 문양 구성은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와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로 대표되는 [[역삼동식토기|역삼동식 토기]]와 [[가락동식토기|가락동식 토기]]의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가 조합을 이루는 시기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판단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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