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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제주도의 신석기 문화(濟州道의 新石器文化)}}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제주도의 신석기 문화 | 시대=신석기 시대 | 관련 지역=제주도 | 관련 유적=제주 고산리 유적, 제주 북촌리 유적 | 키워드=[[한반도 신석기 시대의 지역 구분]], [[제주도의 신석기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4 | 집필자=박근태 }} ==설명==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식생대가 분포하는 섬이다. 전형적인 아열대 해양성 기후로, [[구로시오해류|구로시오 해류]]를 따라 해양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은 새로운 도서 문화가 성립하는 배경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립을 유발하여 문화 유입이 늦어지거나 기존 문화가 지속하기도 한다. 이에 제주도의 신석기 문화는 [[한반도남부지역의신석기문화|한반도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문화]] 양상과 유사하면서도 때로는 확연히 다르다.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초창기 단계의 유물은 한반도에서 거의 확인되지 않지만, 제주도에서는 ‘고산리 문화’로 일컬어지는 [[고산리식토기|고산리식 토기]]나 [[눌러떼기|눌러떼기]]로 제작된 여러 종류의 작은 [[뗀석기|뗀석기]]가 출토되는 유적이 다수 확인된다. 그리고 남해안 지역 조기의 [[신암리식토기|신암리식 토기]], [[동삼동식토기|동삼동식 토기]], [[연대도식토기|연대도 토기]]를 비롯한 [[덧무늬토기|덧무늬 토기]] 문화, 전기의 [[영선동식토기|영선동식 토기]] 문화, 후기의 [[봉계리식토기|봉계리식 토기]] 문화, 말기의 [[율리식토기|율리식 토기]] 등이 나타나는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 토기]] 문화도 대부분 확인된다. 하지만 중기 단계의 [[굵은새김줄무늬|굵은 새김 줄무늬[太線沈線文]]] 토기 문화와 관련된 유물이나 유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제주도의 신석기 유적은 80개소 정도이며, 조사를 통해 유구나 유물을 확인한 곳은 약 50개소이다. 한반도 남해안 지역과 비교하여 신석기 시대의 시기를 구분하면 표 1과 같다. {| class="listtable" style="text-align:center;" |+ '''표 1. 제주도의 신석기 시대 시기 구분''' |- ! rowspan="3" style="text-align:center;" | 시기 구분 ! rowspan="3" style="text-align:center;" | 절대 연대(B.C.) ! colspan="3" style="text-align:center;" | 토기 형식 |- ! rowspan="2" style="text-align:center;" | 한반도 남해안 ! colspan="2" style="text-align:center;" | 제주도 |- ! style="text-align:center;" | 토기 ! style="text-align:center;" | 유적 |- | 초창기 | 8,000~6,000 | 눌러찍은 점열무늬 토기(안도식, 오산리식) | 고산리식 토기 | 고산리, 강정동, 삼화 지구, 오등동, 수산리, 금성리 |- | 조기 | 6,000~4,500 | 덧무늬 토기(신암리식, 동삼동식) | 덧무늬 토기 | 고산리, 사계리, 한동리, 고산 동굴 |- | 전기 | 4,500~3,500 | 찌른 무늬, 눌러그은 무늬, 눌러찍은 무늬 토기(영선동식) | rowspan="2" | 찌른 무늬, 눌러그은 무늬, 눌러찍은 무늬 토기<br/> ↓ | 온평리, 김녕 실증 단지, 감산리, 고산 동굴 |- | 중기 | 3,500~3,000 | 굵은 새김 줄무늬 토기(수가리 Ⅰ식) | | |- | 후기 | 3,000~2,000 | 퇴화 새김 줄무늬 토기(수가리 Ⅱ식)<br/>새김 줄무늬, 점열무늬 토기(봉계리식) | 퇴화 새김 줄무늬 토기<br/>점열무늬 토기(봉계리식, 북촌리식) | 성읍리, 북촌리, 한동리, 한남리, 시흥리 |- | 말기 | 2,000~1,500 | 겹아가리 토기(율리식) | 겹아가리 토기 | 시흥리, 우도, 하모리, 북촌리 |} 후기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변화하는 신석기 시대 초창기 단계에는 기후 변화가 초래한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그 결과 토기(고산리식 토기), [[돌살촉|돌살촉(활의 사용)]], 다양한 형태의 [[갈돌|갈돌]]과 [[갈판|갈판]], [[간돌도끼|간 돌도끼]]가 하나의 유물 조합상을 이루는데, 이것이 ‘고산리 문화’이다. 초창기 단계의 고산리 문화가 매우 활발히 전개된 것에 비해 조기 단계나 전기 단계에는 유적이나 유물이 대폭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제주도의 신석기 시대 초창기의 토기는 고산리식 토기로 유기물 혼입흔 토기, 눌러찍은 점열무늬[押捺點列文] 토기,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로 구성된다. 유기물 혼입흔 토기는 바탕흙[胎土]에 볏과의 억새속형, 기장족형, 강아지풀속형, 쇠풀족형, 잔디속형의 식물을 혼입하여 성형하였다. 눌러찍은 점열무늬 토기는 [[여러날무늬새기개|여러 날 무늬 새기개[多齒具]]]나 [[외날무늬새기개|외날 무늬 새기개[單齒具]]]를 이용한 연속 [[눌러찍기|눌러찍기[押捺]]] 기법으로 시문되었으며, [[지자무늬|‘지(之)’자무늬]], [[평행선문|평행선문]], [[집선무늬|집선무늬]], [[빗금무늬|빗금무늬]], [[방형격자무늬|방형격자무늬]], [[격자무늬|격자무늬]], [[수직무늬|수직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나타난다. 조기의 덧무늬 토기는 가공 방법에 따라 점토 띠를 토기 표면에 그대로 붙인 [[융기대문|융기대문(隆起帶文)]] 토기, 점토 띠를 붙인 후 그 위에 눈금[刻目]을 새긴 [[융기선문|융기선문(隆起線文)]] 토기, 융기대문·융기선문 복합 무늬 토기로 구분되며, 여기에 [[새김줄무늬|새김 줄무늬[沈線文]]]나 [[자돌문|찌른 무늬[刺突文]]], [[두립문|콩알무늬[豆粒文]]]가 복합 시문된 형태도 확인된다. [[제주고산리유적|고산리 유적]]과 [[제주한동리유적|한동리 유적]]에서 출토된 수직 융기선문 토기와 기하학적인 융기선문이 3열 시문된 토기만 전체 기형이나 무늬 배치가 확인된다. 융기대문 토기보다 융기선문 토기의 비율이 훨씬 높으며, 집선무늬가 장식되다가 무늬 구성이 단순해진다. 콩알무늬 토기를 포함하는 세죽 유형의 덧무늬 토기는 [[제주오등동유적|오등동 유적]]에서 확인된다. 전기 단계의 토기는 영선동식 토기가 대표적이다. 제주도 영선동식 토기의 기형은 [[바리토기|바리 토기]], [[사발모양토기|사발 모양 토기]],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로 바닥의 형태는 대체로 둥글거나 뾰족하다. 토기의 무늬는 시문 방법에 따라 찌른 무늬, [[압날문|눌러찍은 무늬]], [[압인문|눌러그은 무늬[押引文]]], [[가는새김줄무늬|가는 새김 줄무늬[細沈線文]]], [[골아가리|골아가리]]로 구분되며, 문양대(文樣帶)에는 [[가로생선뼈무늬|가로 생선뼈무늬]], [[삼각집선무늬|삼각 집선무늬]], 비뚠 격자무늬, [[짧은빗금무늬|짧은 빗금무늬]], [[점열무늬|점열무늬]]가 시문된다. 제주도 영선동식 토기 단계는 총 3시기로 구분되며 Ⅰ단계는 찌른 무늬계 토기 중심의 영선동식 토기, Ⅱ단계는 가로 생선뼈무늬 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가 확인된다. Ⅲ단계는 가로 생선뼈무늬가 퇴화하고 수직무늬나 복합무늬로 변화한다. 중기 유적은 확인되지 않는 반면, 후·말기 단계 유적은 매우 넓고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한동리 유적, [[서귀포시흥리유적|시흥리 유적]], [[서귀포하모리유적|하모리 유적]], [[제주우도패총|우도 조개더미]]처럼 [[조개더미|조개더미]] 유적이 증가한다. 점열무늬, [[깃털무늬|깃털무늬]], ‘지(之)’자무늬, 격자무늬, 집선무늬 계통의 봉계리식 토기와 현지화하여 원형이나 삼각 점열무늬가 3~4줄 시문된 [[북촌리식토기|북촌리식 토기]]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제주도에서는 한반도 지역에서 확인되는 다양한 형태의 [[집자리|집자리]]가 확인되지 않는다. 하천을 따라 [[구덩이|구덩이]] 유구[竪穴遺構], 야외 화덕 자리, 구상 유구가 분포하며, 주로 해안 지역과 중산간 일대에서 확인된다. 야외 화덕 자리는 불탄 흙이 확인된 유구나 [[돌더미유구|돌더미 유구]]로 나타나며, 무시설 구덩식[竪穴式], 구덩식 돌더미 유구, 평지식 돌더미 유구, 돌두름식[圍石式] 형태로 축조된다. 정주를 의미하는 집자리의 부재와 구덩이나 야외 화덕 자리를 중심으로 하는 유구 축조는 소규모의 집단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생활한 결과로 보인다. 유적에 따라 반복하여 점유하거나 단기적으로 점유하는 등 다양한 양상이 나타난다. 유물 출토 양상을 살펴보면, 초창기 유적에서는 뗀 돌살촉 등 다양한 형태의 [[수렵구|수렵구]]가 매우 높은 비중으로 나타나, 수렵 중심의 생활이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갈돌과 갈판의 발달은 [[채집활동|채집 활동]]이 [[수렵활동|수렵]]이나 [[어로활동|어로 활동]]에 못지않게 중요한 식료 공급 방식이었음을 의미한다. 조기 단계가 되면 [[그물추|그물추]]를 이용하여 어로 활동을 하며, 조개더미도 형성된다. [[완도여서도조개더미|완도 여서도 조개더미]] 등 남해안 지역과 직접 교류하며 해양 자원을 채취하는 방법이나 다양한 어로법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기 단계가 되면 수렵구 중 돌살촉이 급감하고 [[찌르개|찌르개]]는 확인되지 않아, 적극적인 수렵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기 단계에서도 그물추를 이용한 [[그물어로|그물 어로]]는 지속되나, 수렵구가 확인되지 않아 직접적인 수렵 활동은 확인할 수 없다. 석기 중에서 식료 가공구인 갈돌, 갈판, 돌망치, 돌날석기의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보아, 수렵이나 어로에 비해 채집 활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전기 단계의 생업 활동은 채집 활동이 중심이 되고 그물을 이용한 어로 활동과 조간대 조개류 채집이 부수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후·말기 단계가 되면 제주 전역으로 유적이 확산하며 조개더미 유적이 증가한다. 조개더미 유적의 증가는 적극적인 바다 자원의 활용을 의미하며, [[결합식낚시|결합식 낚시]]나 [[빗창|빗창]] 등의 [[뼈뿔연장|뼈뿔연장]]도 다수 출토된다. 석기 가운데 [[숫돌|숫돌]]의 비중이 높은 것도 [[간석기|간석기]]나 뼈뿔연장의 제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귀포사계리유적|사계리 유적]]이나 [[서귀포성읍리유적|성읍리 유적]], [[제주이호동유적|이호동 유적]]에서 발견된 발달된 [[굴지구|굴지구(대형의 뗀 돌도끼)]]는 채집 생활을 넘어선 원시적인 [[농경|농경]] 생활도 고려하게 한다. 한편, 제주도는 한반도 남해안 지역 중기 단계의 굵은 새김 줄무늬 토기 문화가 유입되지 않았다. 굵은 새김 줄무늬 토기가 부재한 원인을 하나로 단정 지어 설명할 수 없지만, 신석기 시대 중기에는 농경이라는 생계 방식이 섬까지 유입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제주도 신석기 시대에는 전 시기에 걸쳐 정주 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 마을이나 집자리가 확인되지 않는다. 신석기 중기 문화는 정주성이 강하고 굵은 새김 줄무늬 토기는 대형 토기로 제작되는 만큼, 중기 문화가 이동 생활을 주로 영위했던 당시 제주 선사 시대 사람들의 생활 양식과 부합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또한 신석기 시대 제주도에서는 화산 활동이 활발했는데, 이러한 자연 재해 등의 요인이 있어 중기의 굵은 새김 줄무늬 토기 문화가 제주도로 유입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 결과 전기의 영선동식 토기 문화가 중기 단계까지도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제주_고산리_유적_전경.jpg File:제주_고산리_유적_출토_유기물_혼입흔_토기.jpg File:제주도_신석기_시대_유적_분포도.jpg </gallery> ==참고문헌== * 박근태. (2019). 제주도 지역의 신석기문화. <i>계간 한국의 고고학, 45</i>. * 박근태. (2021). <i>제주도 신석기문화 연구</i>. (박사 학위 논문). 부산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5810260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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