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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한수 2기 문화(漢書2期文化)}}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한수 2기 문화 | 이칭별칭=한서 2기 문화(漢書2期文化)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지역=헤이룽장성 남부 | 지린성 쑹넌평원 지역 | 관련 유적=한수 유적, 바이진바오 유적, 싼지쯔 유적, 샤오라하 유적, 핑양 유적, 샤오덩커 유적, 두얼보터관디 유적, 허우투무 유적, 전싸이 유적, 베이강쯔 유적 | 키워드=[[한수 유적의 하층]], [[무문 토기]], [[철기]], [[다리가 매우 짧은 삼족기]], [[력]], [[정]], [[호]], [[장경호]]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강인욱 }} ==설명== 중국 헤이룽장성 남부와 지린성 일대에 분포하는 쑹넌평원(松嫩平原) 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까지의 문화이다. 다층위 유적인 [[한수유적|한수 유적]]이 조사되면서 ‘한수 문화’로 명명하였으나, 독립된 명칭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청동기 시대(기원전 10~6세기)에 해당하는 한수 1기 문화를 [[바이진바오문화|바이진바오 문화(白金寶文化)]], [[한수유적하층|한수 유적의 하층]]에 해당하는 [[철기시대|철기 시대]](기원전 5세기~2세기)는 쑹화강(松花江) 유역의 초기 철기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로 분리되어서 ‘한수 2기 문화’로 구분한다. 한수 유적은 1974년에 지린성 다안시에서 한수촌의 동북쪽 쑹화강을 접한 언덕에 위치하며,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에서 [[요금시대|요금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이 확인된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의 문화층이 시기를 달리하여 퇴적되었음이 밝혀졌다. 그 중에서 이른 시기인 [[바이진바오문화|한수 1기 문화(바이진바오 문화)]]에서는 니질 계통의 기벽이 얇은 [[토기|토기]]에 채문과 가죽을 모방한 문양을 시문한 특이한 기형의 토기군이 발견되었고, 이는 1960년대에 조사한 [[바이진바오유적|바이진바오 유적]]과 동일한 문화임이 밝혀졌다. 한편, 한수 2기 문화층에서는 황갈색의 사질 계통 토기에 [[승문|승문(繩文)]]과 [[무문토기|무문 토기]], 또는 [[슬립을입힌토기군|슬립을 입힌 토기군]]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쑹넌 유역에서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군이 확인되었고, 한수 2기 문화는 쑹넌 유역의 철기 시대를 대표한다. 최근에 바이진바오 문화 이전의 초기 청동기 시대 단계인 [[샤오하라문화|샤오라하 문화(小拉哈文化)]]가 분리되었다. 이를 통해 쑹넌 지역의 청동기 시대 이후 부여까지의 발전 양상은 샤오라하-바이진바오-한수 2기로 완성되었다. 한수 2기 문화의 대표적인 주거 유적은 자오위안현 [[샤오라하유적|샤오라하]], 다안 한수, 자오위안현 바이진바오 등이 있다. 무덤 유적은 타이라이(泰來) [[핑양유적|핑양(平洋)]], 푸위 [[샤오덩커유적|샤오덩커(小登科)]], [[두얼보터관디유적|두얼보터관디(杜爾伯特官地)]], 쑹위안 [[허우투무유적|허우투무(後土木)]], 전싸이(鎭赛) 탄투(坦途) [[베이강쯔유적|베이강쯔(北崗子)]], 치치하얼 [[싼자쯔유적|싼자쯔]] 유적등이 있다. 학자에 따라서 핑양 무덤을 분리하여 [[핑양문화|핑양 문화]]로 보기도 한다. 자오빈푸(趙賓福)는 한수 2기 문화 초기(전국 초기, 기원전 5세기말~4세기중반), 중기(전국 말기, 기원전 4세기 후반~3세기 후반), 말기(서한, 기원전 2~1세기)로 편년하였다. 한수 2기 문화의 토기는 니질과 황갈색의 수제로 기형은 [[다리가매우짧은삼족기|다리가 매우 짧은 삼족기(三足器)]]인 [[력|력(鬲)]], [[정|정(鼎)]], [[호|호(壺)]], [[장경호|장경호]] 등의 기형이 있다. 문양은 초기에 승문이 많으나 후대로 갈수록 무문과 슬립을 입힌 기형이 많아진다. 청동기는 [[집자리|집자리]]에서 출토 예는 많지 않다. 핑양, 싼자쯔 등의 무덤에서는 초원 계통의 동물 장식, [[대구|대구(帶鉤)]] 등이 있으며, [[황금제귀걸이|황금제 귀걸이]]도 출토되었다. 한수 2기 문화와 그 이전의 바이진바오 문화 사이에 기형에서 유사함도 많지만, 실제로 분명한 연결 고리는 없다. 2009년에 출간된 보고서에는 바이진바오 문화 단계까지는 다양한 집자리와 유물들이 출토되는 반면에 한수 2기 문화가 되면 유적이 급감하고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만 일부 출토되는 양상이다. 이는 한수 2기 문화에 심화되는 유목 문화적 성격과 관련지어서 본다면 기후와 환경 등의 변화로 정착 대신 유목을 택하는 등 생계 경제의 변화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한수 2기 문화는 그 이후의 초기 부여 시기(기원전 2세기~서기 2세기)와 유사한 단절적인 모습을 보인다. 초기 부여 단계에서 유목의 성격이 강한 문화는 [[라오허선유적|라오허선(老河深)]], [[시차거우유적|시차거우(西岔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지역은 극히 일부이며 토기 상에서 차별성이 뚜렷하다. 이와 같이 한수 2기 문화는 개활지라는 쑹넌평원의 지리적 특성과 한대와 농업을 위주로 하는 예맥 문화권의 중간 지대라는 특성이 잘 드러난다. 기원전 4~2세기대에 유목 성격이 강하다는 점은 나아가서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 일대에 초원 문화가 유입되는 시점과 일치한다. 또한, 한수 2기 문화는 중국 동북 지역에서 가장 이른 [[철기|철기]]가 출토된 흔적이 있다. 따라서 한수 2기 문화가 가지는 의의는 쑹넌평원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철기 시대의 시작과 관련하여서도 주목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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