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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찬드만 문화(Чандман соёл)}}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찬드만 문화 | 이칭별칭=울란곰 문화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지역=북서 몽골 | 관련 유적=울란곰 유적 | 키워드=[[스키토-시베리아 문화]], [[카라수크 문화]], [[파지리크 문화]],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청동 단검]], [[긴 목 항아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강인욱 }} ==설명== 북서 몽골의 기원전 6~3세기 스키토-시베리아(Скифо-сибирское) 시기에 존재했던 대표적인 문화이다. 러시아 고고학자 노브고로도바(Новгородова Э.А.)가 ‘울란곰 문화(Улангомская культура)’로 명명하였으나, 체벤도르지(Цэвээндорж Д.)가 이 지역에 대한 추가 조사를 통해 찬드만 문화로 명명하였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울란곰유적|울란곰]]으로, 러시아 투바공화국과 접해있다. 실제 무덤의 문화상도 투바 지역의 [[스키토-시베리아문화|스키토-시베리아 문화]]인 [[사글리-바지문화|사글리-바지(Саглы-бажи)]] 또는 [[우유크문화|우유크 문화(Уюкская культура)]]와 유사성이 많다.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소련-몽골 연합원정대가 조사하였다. 무덤의 양식은 크게 [[목곽묘|덧널무덤(木槨墓)]]과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으로 나뉜다. 덧널무덤은 대부분 정방형이며, 일부 사다리꼴도 확인된다. 3~4줄의 통나무로 구성되어 있으며, 덧널의 천장은 통나무로 막았다. 무덤 구덩이 바닥에는 나무나 돌을 깔아 정리하였다. 돌덧널무덤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이며 유물의 양도 적다. 매장 방식은 하나의 무덤 구덩이에 1~3명을 묻었으며, 주검은 한쪽으로 몸을 굽혀 묻었다(側臥屈身葬). 머리 방향은 서쪽 또는 북서쪽이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紅陶)]] 계통의 [[긴목항아리|긴 목 항아리(長頸壺)]] 2~3점, 청동기류는 [[투부|투부(鬪斧·Чекан)]], [[청동단검|청동 단검(靑銅短劍)]], [[청동칼|청동 칼(銅刀)]]의 무기류, 허리띠 버클, 청동 거울 모양 장식, [[동물형장식|동물 장식]] 등의 의복 장신구류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출토 양상은 투바의 사글리-바지 문화와 함께 사얀-알타이(Саян-Алтай) 지역으로 유입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편, 울란곰에서는 글자로 볼 수 있는 다양한 기호(탐가)가 발견되었다. 울란곰 11호 덧널무덤의 출토 토기의 기호를 “건강을 위해 마셔라” 로 번역하는 학자도 있다. 즉, 이 토기는 성스러운 술 또는 우유를 담았던 그릇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유목민은 우유를 생명의 원천으로 해석하여 번역의 신빙성이 높다. 찬드만 문화의 유물은 단순한 기호의 범주를 벗어나는 구체적인 문법 체계의 기호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 예가 많지 않아 단정 짓기는 어렵다. 찬드만 문화의 주민은 일부 몽골인의 흔적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유럽인종이 주류를 이룬다. 이는 투바의 사글리-바지 문화와 함께 서부 시베리아에서 발달된 청동기를 사용했던 유목민들이 유입되어서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찬드만 문화와 비교가 되는 몽골 동부의 [[판석묘문화|판석묘 문화(Культура плиточных могил)]]는 강한 몽골로이드 계통의 특징이 보인다. 후기로 갈수록 몽골로이드의 비율이 많아지는데, 여성의 몽골로이드 비율이 높아진다. 또한, 집단 간의 갈등이 극대화되었던 양상이 확인되었다. [[울란곰유적|울란곰 유적]]의 두개골에는 심한 경우 4~5개 정도의 천공(穿孔)이 확인되었다. 이는 투부나 단검, 화살촉으로 내리치거나 박혀 생긴 흔적으로, 대부분의 천공에는 추가로 뼈가 자란 흔적이 없어서 전쟁 중에 치명상을 입은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무덤에서 발견된 다양한 무기들과 비교한 결과 천공은 주로 투부나 화살 등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울란곰 문화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 속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주민의 기원에 대해 연구자들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의 형성 이전인 청동기 후기 [[카라수크문화|카라수크 문화(Карасукская культура)]](기원전 13~9세기)일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 이유는 유독 울란곰 문화에서 카라수크 시기의 동검이 많이 발견되며, 기타 유물에서도 유사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고원의 분지 지형으로 청동기 시대인 카라수크 문화의 주민이 이동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물이 극도로 부족하여 건조한 기후 환경에 맞는 말과 낙타를 교통수단으로 널리 사용하였다. 기원전 2세기 주민은 완전히 교체되어 울란곰 문화는 새로운 몽골로이드 주민에게 배제되었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흉노가 몽골의 부족들을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복속시켰다고 전한다. 찬드만 문화는 흉노의 형성 이전 유라시아 일대에 분포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가 몽골 서북부에 정착한 상황을 대표하는 문화이다. 이와 비교되는 [[파지릭문화|파지리크 문화(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는 알타이 지역에서 비교적 늦은 시기(기원전 4세기)에 이동하여 유입된 반면, 찬드만 문화는 그 이전 단계의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거주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또한, 투바 지역과의 관련성이 강하여 사얀-알타이산맥의 동쪽에 형성된 독특한 지역 문화를 규명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몽골의 동쪽에 형성된 몽골로이드의 판석묘 문화와 대비되는 찬드만 문화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유입된 유목 문화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유라시아의 동서 문명을 가르는 유목 문화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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