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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주카이거우 유적(伊金霍洛旗 朱開溝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주카이거우 유적 | 이칭별칭=주개구 유적(伊金霍洛旗 朱開溝遺蹟)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중국 | 소재지=중국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 어얼둬쓰시(鄂尔多斯市) 이진훠뤄기(伊金霍洛旗) 주카이거우촌(朱開溝村)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무덤]], [[룽산 문화]], [[북방식 동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강인욱 }} ==설명==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 어얼둬쓰시(鄂尔多斯市) 이진훠뤄기(伊金霍洛旗) 주카이거우촌(朱開溝村)에 위치한다. 오르도스 고원 지역 초기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1974~1977년, 1980~1984년에 걸쳐 총 면적 4,000㎡를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집자리|집자리]] 87기, [[고분|무덤]] 329기 등이 조사되었다. 유적은 다층위(多層位) 유적으로 그 문화상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단계는 [[용산문화|룽산 문화(龍山文化)]] 시기(기원전 25~20세기), 2단계는 하나라 시기(기원전 20~18세기), 3단계는 하~상나라 초기(기원전 18~15세기)이다. 유적은 이 지역에 유목 문화가 유입되기 이전의 시기를 잘 보여준다. 특히 가장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초기 상나라 시기의 1040호 무덤에서는 [[중위안계 무기|중위안계 무기]]와 함께 [[북방식동검|북방식 동검(北方式銅劍)]]이 출토되었다. 동검은 길이 25㎝로, 주조(鑄造) 후에 열냉법(熱冷法)으로 가공 처리하였다. 신부(身部)는 [[유엽형|유엽형(柳葉形)]]이며, [[검격|검격(劍格)]]는 ‘V’자 모양이다. [[검병|검병(劍柄)]]의 끝에는 구멍이 뚫려 있으며 노끈을 감은 흔적이 남아 있다. 주카이거우 유적에서 출토된 북방식 동검은 유라시아 초원 지역의 [[안드로노보 문화|안드로노보 문화(Андроновская культура)]]와 함께 공존했던 [[세이마-투르비노계통|세이마-투르비노(Сейминско-турбинская культура) 계통]]의 동검과 가장 유사하다. 이는 유라시아의 청동기가 중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동검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외에도 중위안 지역과 관계 깊은 다양한 집자리와 토기도 확인되어 정착 문화가 시기를 달리하여 서로 교차했던 이 지역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980년대에 중국 학계에서는 주카이거우 유적을 중국의 선흉노 문화가 중위안에서 기원했음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주민 자체는 이 지역에서 거주했으나, 청동기의 제작 기술은 세이마-투르비노로 대표되는 유라시아의 청동 제련 기술이 이 지역으로 이동하여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같이 주카이거우 유적은 신석기 시대 말기에서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정착민이 점차 유목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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