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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야요이 시대의 독무덤(弥生時代의 甕棺墓)}}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야요이 시대의 독무덤 | 이칭별칭=미생 시대의 독무덤, 미생 시대의 옹관묘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지역=북서부 규슈 | 후쿠오카현 서부 사가현 | 북부 구마모토현 | 관련 유적=가네노쿠마 유적, 미쿠모미나미쇼지 유적, 혼손고모리 유적 | 키워드=[[독무덤]], [[한경]], [[하쿠겐식 독무덤]], [[긴카이식 독무덤]], [[조노코시식 독무덤]], [[군덴식 독무덤]], [[스구식 독무덤]], [[다테이와식 독무덤]]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창희 }} ==설명== 유아(乳兒)를 독널에 매장하는 사례는 시·공간적으로 넓게 존재하지만 성인을 매장하는 사례는 대부분 [[세골장|세골(洗骨)]], [[화장|화장]] 등 2차 매장이다. 여기에서 설명할 독널은 성인을 직접 매장하기 위한 전용(專用) 독널이다. [[야요이시대|야요이 시대]]의 독널은 주로 규슈의 북서부, 후쿠오카현 서부에서 사가현, 구마모토현 북부로 한정되어 분포한다. [[독무덤|독무덤]]은 야요이 시대 전기 말부터 급속도로 대형화되며 분포 범위도 확대된다. 특히 중기 후반부터는 소위 왕묘라 불리는 최상위 계층의 무덤으로 독널이 채용되고, 한반도 남부의 [[세형동검문화|세형동검 문화]] 영향으로 각종 청동 의기류와 [[한경|중국 거울(漢鏡)]] 등의 화려한 유물이 껴묻힌다. 일본 고고학에서는 형식학적 분석을 통해 독널을 세분하며 각 시기를 대표하는 유적 명을 따서 ‘○○식’으로 부르고 있다. 전대의 독널을 후대의 독널이 파괴한 사례가 적지 않다. 또한, [[껴묻거리|껴묻거리]] 중에는 전한 시대부터 후한 시대까지의 다양한 중국 거울이 있어서 독널의 형식학적 상대 연대가 검증되어 왔다. 독무덤의 형식명 중에서는 일상 토기의 형식명과 동일한 경우도 있지만 시기는 같지 않다. 독널이 쇠퇴하기 이전인 기원 전후한 시기까지의 독널을 대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쿠겐식독무덤|하쿠겐식 독무덤(伯玄式甕棺墓)]]은 대형의 독널이 확립된 시기에 확인된다. 독립된 독널의 형상이 갖추어지기 이전으로, 일상 토기의 [[항아리|항아리(壺)]]와 형태가 비슷하다. 아가리와 목 부분은(口頸部) 안쪽으로 비스듬하다(內傾). 전기 말에 해당하는 독널이며 대표적으로 [[가네노쿠마유적103호독널|가네노쿠마 유적 103호 독널]]을 들 수 있는데, 피장자는 난카이산(南海産)의 [[조개팔찌|조개 팔찌(貝輪)]]를 착장하고 있었다. 하쿠겐식은 전기 말 이후에도 일부 확인된다. [[긴카이식독무덤|긴카이식 독무덤(金海式甕棺墓)]]은 고단계(古段階)와 신단계(新段階)로 구분된다. 고단계에는 일상 토기 항아리의 형태는 유지되지만 아가리의 안쪽에 덧띠(粘土帶)를 돌려 평탄면을 갖추게 된다. 몸통의 가장 넓은 부분(胴最大徑)은 아래에 있어 묵직하고 안정된 인상을 준다. 본격적으로 [[청동기|청동기]]가 유입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청동기나 [[장신구|장신구]]가 집중되는 [[공동묘지|공동묘지(群集墓)]]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신단계에는 항아리의 가장 넓은 부분이 중상위로 이행하는 단계로 목 부분(頸部)은 외반(外反)한다. 아가리 안쪽은 전단계보다 두터운 덧띠(粘土帶)를 돌려 두께가 훨씬 두꺼워진다. 가장 대표적인 독널은 형식명의 유래가 된 김해 조개더미의 독널을 들 수 있는데, 한국의 ‘김해’가 일본식 발음으로 ‘긴카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청동 이기(利器)와 [[여러꼭지잔무늬거울|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多紐細文鏡)]]이 출토되었다. 일상 토기로는 [[조노코시식고단계|조노코시식 고단계]]에 해당한다. [[조노코시식독무덤|조노코시식 독무덤(城ノ越式甕棺墓)]]의 몸통은 달걀 모양이며, 아가리는 역 ‘L’자로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몸통 상위의 [[새김줄무늬|새김 줄무늬(沈線文)]]는 점점 간략화되어 몸통에 돋을띠(突帶)가 돌아가는 형식으로 변화한다. [[혼손고모리유적58호독널|혼손고모리 유적(本村籠遺跡) 58호 독널]]은 다음 형식으로 전환되는 양상이 잘 나타난다. 일상 토기로는 [[조노코시식신단계|조노코시식 신단계]]에 상당한다. [[군덴식독무덤|군덴식 독무덤(汲田式甕棺墓)]]의 아가리는 안쪽으로 뻗어 나오고 몸통의 가장 넓은 부분이 아가리 바로 아래에 있다. 독널의 두께는 얇아져 가벼워지고, 동시에 높이는 길고 커진다.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이 부장되며 일상 토기는 [[스구식고단계|스구식 고단계]]에 상당한다. [[스구식독무덤|스구식 독무덤(須玖式甕棺墓)]]은 전체적으로 대형화된 완성기에 해당한다. 아가리 아래의 몸통에 단면 삼각형의 돌대가 돌아가는 것이 많다. 아가리의 단면 형태가 ‘T’자 모양을 띠는 것이 고단계, 아가리가 안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바깥으로 뻗어 나와 처지는 것이 신단계이다. 껴묻거리로 청동기 외에 [[철기|철기]]가 부장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붉은 칠을 하는(丹塗磨硏) 기법이 가미된 항아리, 독(甕), [[굽다리접시|굽다리 접시(高杯)]], [[그릇받침|그릇 받침(器臺)]] 등의 기종 구성이 성립한다. [[다테이와식독무덤|다테이와식 독무덤(立岩式甕棺墓)]]의 고단계에는 아가리 아래의 몸통 돌대의 단면이 ‘ᄃ’자 모양이다. 아가리와 목 부분은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지다가 아가리에서 바깥으로 벌어진다. 독널의 크기는 보다 대형화가 진행된다. [[미쿠모미나미쇼지유적|미쿠모미나미쇼지 유적(三雲南小路遺跡)]]과 같이 중국 거울(前漢鏡)이나 장신구가 집중되는 특정 개인묘가 [[묘역|묘역]]을 형성하기 시작하며, 철기의 부장도 성행한다. 왕묘로 불리는 [[후장묘|후장묘(厚葬墓)]]가 작은 평야 단위로 분포한다. 사회 계층화가 더욱 진전되는 양상이 군집 독무덤에서 드러난다. 신단계의 아가리는 전 단계와 마찬가지로 약간 안쪽으로 기울어져 역‘L’자 모양이며, 몸통은 부풀어 오른 느낌이다. 돌대는 더욱 커지고 대형 독널에는 3개 이상의 돌대가 돌아가는 사례도 많다. 독널 내에 중국 거울 철기가 부장된 후장묘가 만들어진다. 붉은 칠을 한 독널도 만들어지며, 목리 조정흔을 물손질로 지운 것도 나타나는 등 새로운 정면 기법이 독널에 채용된다. 일상 토기는 [[스구식최종단계|스구식의 최종 단계]]에 해당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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