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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시파오쯔 유적(康平 西泡子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시파오쯔 유적 | 이칭별칭=서포자 유적(康平 西泡子遺蹟)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중국 | 소재지=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瀋陽市) 강평현(康平縣) 서남쪽 5㎞ 떨어진 시파오쯔(西泡子) | 성격=고분 | 키워드=[[움무덤]]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천선행 }} ==설명==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瀋陽市) 강평현(康平縣) 서남쪽 5㎞ 떨어진 시파오쯔(西泡子)에 위치한다. 1980년대말 채토 과정에서 주민이 발견하였다. 1989년 톄링시박물관(鐵嶺市博物館)이 무덤 2기(1·2호)를 조사하고, 훼손된 무덤 7기(7호~13호)를 정리하면서 회갈색의 [[직경고복관|직경고복관(直頸鼓腹罐)]] 2점을 수습하였다. 1991년 3~6호 무덤의 추가 조사가 이루어져 [[관|관(罐)]], [[청동이식|청동 이식(靑銅耳環)]] 각 1점씩을 수습하였다. 조사된 1~6호 무덤은 장방형의 [[움무덤|움무덤(土壙墓)]]으로,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1~4·6호 무덤은 장축 방향이 동서방향이고, 무덤 구덩이는 길이 1.7~2.1m, 너비 0.35~0.8m, 깊이 0.6~0.8m이다. 무덤의 [[껴묻거리|껴묻거리]]는 공통적으로 머리 또는 발치 부근에 회흑색의 무문 직경관 1점씩을 부장하였다. 3호 무덤에서는 청동 이식이 확인되었다. 5호 무덤은 장축 방향 남북으로, 규모는 길이 2m, 너비 0.76m, 깊이 0.66m이다. [[단인장|단인장(單人葬)]]으로 주검은 바로 펴묻었다(仰身直肢葬). 5호는 발굴된 무덤 중 북쪽에 위치하여, 무덤간 축조 시기와 주민 간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에서 청동 이식 2점이 사람 뼈의 양쪽 귀 부근에서 출토되었고 관 1점이 주검의 발치에 놓여 있었다. 이외에 훼손된 무덤에서 21점의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직경고복관을 비롯하여 [[곤봉두|곤봉두(棍棒頭)]], [[골잠|골잠(骨簪)]]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연대는 5호 무덤이 다른 무덤들보다 이르다. 전국 시대 중기 전후인 기원전 4세기대로 추정되며 이보다 더 이른 시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주축 방향이 동서 방향의 무덤의 연대는 서한 조기로 판단된다. 이 시기는 이미 동호가 흉노에 의해 멸망하여 북쪽의 선비와 남쪽의 오환으로 갈라지는 시기이다. 시파오쯔 유적의 무덤과 출토 유물이 주변 유적 중 유사한 사례가 확인되지 않아서 유목 민족, 즉 남으로 파급된 오환족의 일파로 추정된다. 현재 랴오닝 북부 지역의 장성 북쪽 한나라 유목 민족 무덤인 댜오빙산 다밍진 [[베이거우유적|베이거우 유적(北溝遗址)]]의 출토품과 시파오쯔 유적이 동일하다. 시파오쯔 유적과 [[시차거우무덤|시차거우(西岔溝) 무덤]]과 같은 유목 성격이 뚜렷한 유적을 남긴 부족에 대해 흉노설, 오환설, 부여설로 의견이 분분하다. 보고자는 시파오쯔 유적을 오환족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파급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라고 판단하였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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