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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스나자와 유적(弘前 砂沢遺跡)}}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스나자와 유적 | 이칭별칭=히로사키 스나자와 유적, 홍전 사택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일본 | 소재지=일본 아오모리현(青森県) 히로사키시(弘前市) 미와(三和) | 성격=유적 | 키워드=[[스나자와식 토기]], [[집자리]], [[도작 농경]], [[조몬 적인 요소]], [[흙 인형]], [[수전]]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동관 }} ==설명== 일본 아오모리현(青森県) 히로사키시(弘前市) 미와(三和)에 위치한다. 히로사키시 북부, 이와키강(岩木川) 북쪽 구릉 상에 입지한다. 1987년 2기의 수전이 발견되어 당시 일본 열도 최북단, 가장 높은 경도에 위치한 수전 유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수전을 구획한 이랑(둑)과 수로는 조몬 시대 종말기 또는 야요이 시대 초기로 편년되는 [[스나자와식토기|스나자와식 토기(砂沢式土器)]]가 포함된 층에서 확인되었다. 이후 추가 조사에서 4기의 수전과 그와 결합된 수로가 발견되었다. 저수 제방 공사로 인해 유구가 파괴되면서, 조사된 6기의 수전보다 상층에 해당하는 유구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토층의 플랜트·오팔(plant·opal) 분석을 통해 쌀이 검출되어 이후 시기에도 수전이 존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나자와 유적의 수전은 이랑에 의하여 장방형 모양으로 구획되어 있다. 1·2호 수전은 이랑의 규모가 가장 크다. 수로는 수전의 서쪽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며 3호 수전 부근에서는 조몬 시대 후기 [[집자리|집자리]]를 파괴한 흔적도 확인되었다. 1호 수전의 형태가 불명하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1호 수전으로 급수하고, 그 동쪽이나 3호 수전으로 물을 배수하는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확인된 유구의 해발은 약 9~11m이다. 수전은 완전한 형태로 확인되지 않아 일정 부분을 복원하였을 때, 최대 면적이 3호 167.2㎡(추정 207.2㎡),최소 면적은 6호 7.4㎡(추정 63.8㎡)이다. 이러한 수치는 당시 농경 문화의 도입지인 북부 규슈의 [[나바타케유적|나바타케 유적]]의 수전보다도 약간 크다. 출토 유물 중 석기는 [[돌검|돌검(石劍)]], [[간돌살촉|간 돌살촉]], [[간돌도끼|간 돌도끼]], [[다두석부|다두석부(多頭石斧)]], [[돌송곳|돌송곳(石錐)]], [[석시|돌 숟가락(石匙)]], [[긁개|긁개(搔器)]], [[몸돌|몸돌(石核)]], 각종 옥류(장신구) 등이 확인되었다. 조몬 시대와 야요의 시대의 유물이 복합적으로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스나자와 유적의 야요이인들은 야요이 시대 중기 후반까지 [[도작농경|도작 농경]]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고 수렵과 채집 등 [[속조몬문화|조몬 적인 요소]]도 상당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토제품은 [[흙인형|흙 인형(土偶)]]과 [[토판|토판(土版)]]이 다수 출토되었다. 그러나 소형의 토판을 제외하면, 모두 파손품이다. 특히 흙 인형은 의식적으로 파손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해당 유물의 의례적 성격을 엿볼 수있다. 스나자와 유적은 도호쿠 지역의 야요이 시대 농경에 대한 실증 자료라는 측면과 조몬 문화적 요소의 잔존과 소멸 과정을 생각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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