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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사카 문화(Сакская культура)}}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사카 문화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지역=카자흐스탄 | 키르기스탄 북부 | 중국 신장성 이리 지역 | 러시아 알타이 | 관련 유적=이시크 고분군, 베스샤티르 고분군, 실릭티 고분군, 베렐 고분군, 탁사이 고분군, 포크롭카 유적 | 키워드=[[유목 문화]], [[사카]], [[타스몰라 문화]], [[황금 문화]], [[쿠르간]], [[돌무지계 고분]], [[돌무지계 덧널무덤]]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강인욱 }} ==설명==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기원전 8~3세기에 분포하는 [[유목문화|유목 문화]]로, ‘[[사카|사카]]’라는 명칭은 이 지역의 고깔 모자를 쓰는 유목민을 통칭한다. 이들은 기원전 1000년기 이란-페르시아계에서 투르크 계통으로 이어지는 유목민의 문화를 의미한다. 이후 [[토하르인|토하르인]], [[소그드문화|소그드 문화]] 등으로 이어지는 문화적 특징을 형성하는 주요한 근간이 된다. 좁은 의미의 사카 문화는 중앙아시아 일대의 유목 문화에 근거를 둔 집단으로 주요 연대는 기원전 8~3세기대이다. 하지만 기원전 30세기대의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발생과 초기 [[조로아스터교|조로아스터교]]의 발생으로 대표되는 이 지역 유목 문화의 형성에서 그 기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 사카 문화는 이후 [[스키토-시베리아문화화|스키토-시베리아 문화(Скифо-сибирская культура)]]와 같은 시기에 존재한다. 지역적으로는 그보다 남쪽에 위치하지만, 유목 문화의 발달 과정은 비슷하다. 사카 문화의 초기 시기(기원전 9~7세기)에는 카자흐스탄 중부를 중심으로 [[타스몰라문화|타스몰라 문화(Тасмолинская культура)]]가 분포한다. 랴오시 지역에서 캅카스(Кавказ) 지역까지는 원거리 상호 작용권(long-distance interaction sphere)이 형성되었다. [[샤자뎬상층문화|샤자뎬 상층 문화(夏家店上層文化)]]의 [[투구|투구(冑)]] 및 [[말갖춤|말갖춤(馬具]])이 중앙아시아를 비롯하여 아나톨리아반도까지도 확산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원거리 상호 작용권으로 초원을 매개로 하는 [[무기|무기]]와 말갖춤이 유라시아 일대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카 문화의 전환기는 기원전 6세기대로, 화려한 [[황금문화|황금 문화]]와 거대한 [[고분|고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사카 문화는 고대 근동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를 기반으로 그 존재를 알리고, 근동 지역 예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사카가 근동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시기 역시 기원전 6세기대로,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년)에 조공을 하고 그곳에 편입되었다.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에 새겨진 다리우스 왕에게 진상하는 고깔 모자를 쓴 사람들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때이다. 이렇게 중앙아시아의 사카인은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에 복속되어 서양의 고전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 당시 기록에는 사카 계통의 주민들을 주로 사르마트(Sarmat, 카자흐스탄 서부 및 우랄산맥), 마사게티아(Massagetiae), 이세도네스(Issedones, 카자흐스탄 동부), 아리마스피(Arimaspi, 카자흐스탄 동북부),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 등으로 나뉜다. 사카는 기원전후한 시기에 [[흉노|흉노]]의 침입으로 세력을 잃지만, 주민 집단은 실크로드의 교역을 담당하는 주축 세력으로 잔존하였다. 또한, 투르크 계통의 주민들과도 친연 관계가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예컨대, 기원전 5세기대에 축조된 [[이시크고분군황금인간|이시크 고분 황금 인간(Золотой человек)]] 에서 발견된 [[은제그릇|은제 그릇]]의 바닥면에서는 투르크의 [[룬문자|룬문자]]와 유사성을 가진 글자들이 발견된 바 있다. 고고학계에서는 사카 문화를 카자흐스탄 일대에 기원전 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확인되는 거대한 [[쿠르간|쿠르간]]과 화려한 황금 문화로 간주한다. 사카인들은 유목 경제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들의 권역 내에서는 정착을 하고 도시를 이룬 흔적도 확인되어 정착민의 비중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기원전 6~3세기는 사카 문화의 전성기로 다양한 황금 문화와 [[돌무지계고분|돌무지계(積石系) 고분]]들이 축조되었다. 특히 카자흐스탄의 동부 제티수[Жетысу(세미레치예Семиречье)]지역에는 돌무지계 고분으로 대표되는 사카 문화가 분포한다. 사카 문화가 널리 확산되는 시기는 기원전 6세기에 시작되는 찬란한 카자흐스탄의 황금 문화가 발달하면서이다. 이 역시 페르시아 제국과의 교류를 통해 황금 및 동물 양식이 폭넓게 도입되었다. 그 결과 초기 스키토-시베리아의 동물 장식과는 또 다른 독특한 사카계 예술 양식이 창조되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황금 인간으로 유명한 이시크 고분,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과 유사한 [[베스샤티르고분군|베스샤티르 고분]], [[실릭티고분군|실릭티]] 등이 있다. 또한 카자흐스탄 동북부 러시아 알타이에서는 [[베렐고분군|베렐 고분]]으로 대표되는 [[파지리크문화|파지리크 문화(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가 존재한다. 그 외에 카자흐스탄 중부는 초기 [[스키타이문화|스키타이계 문화]]인 타스몰라 문화와 카자흐스탄 서부 및 우랄산맥 일대에는 [[사브로마트문화|사브로마트 문화(Савроматская культура)]]와 [[사르마트문화|사르마트 문화(Сарматская культура)]]가 분포한다. 카자흐스탄 서부의 [[탁사이고분군|탁사이 고분군]]과 우랄산맥의 [[포크롭카유적|포크롭카 유적(Памятник Покровка)]]이 대표적이다. 사카 문화의 내부에 성지와 주거 유적들도 다수 발견되었지만, 그들의 문화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과 유사한 고분으로 꼽히는 사카의 돌무지계 고분이다. 사카 문화의 고분은 흔히 ‘돌무지계 고분’으로 통칭된다. 거대한 봉분의 표면에 돌을 쌓아 올리고, 중앙부에는 거대한 덧널로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를 만들었다. 분포 지역은 카자흐스탄 동부, 남부, 키르기스탄(Кыргызстан) 북부, 그리고 중국 신장성(新疆省) 이리(伊犁) 지역 일대에 해당된다. 대부분 구덩식(竪穴式) 이지만, 베스샤티르 유적처럼 일부 대형분에서는 지상식도 있다. 즉, 사카 문화의 돌무지계 덧널무덤이 분포범위는 매우 넓으며 형식상의 변화도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이들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과는 달리 ‘[[돌무지계덜넛무덤|돌무지계 덧널무덤]]’으로 부를 수 있다. 이러한 매장주체의 다양성은 사카 문화의 돌무지계 덧널무덤이 특정한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의 유목 문화, 즉 사카 문화의 요소를 공유하는 집단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흙과 돌무지를 이용하여 봉분을 높게 쌓고 주변에 석렬을 둘러서 제사를 지내는 용도로 사용했음은 같지만 각 지역에 따라 그 고분의 축조 양식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단순하게 한반도 신라 고분과 비교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돌무지계 덧널무덤은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에 분포한 사카 문화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고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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