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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베스샤티르 고분군(Могильник Бесшатыр)}}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베스샤티르 고분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카자흐스탄 | 소재지=카자흐스탄 제티수[Жетысу(세미레치예Семиречье)] 지역 | 성격=고분 | 키워드=[[사카 문화]], [[고분]], [[제례]], [[선돌]], [[덧널무덤]], [[쿠르간]]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강인욱 }} ==설명== 카자흐스탄 제티수[Жетысу(세미레치예Семиречье)] 지역에 위치한 중앙아시아 최대의 사카 문화(Сакская культура) 고분군이다. [[사카문화|사카 문화]]의 가장 대형인 돌무지(積石)계 [[목곽묘|덧널무덤(木槨墓)]]으로 알마티시(Алматы) 동북쪽에 위치한 캅샤가이(Капшагай)호수 북쪽 기슭의 일리(Или)강 유역에 위치한다. 1957·1959~1961년에 아키셰프(Акишев К.А.)가 31개의 거대한 고분들을 확인하였고, 그중 18개의 고분을 조사하였다. 고분 주변으로 다양한 부가 시설들이 확인되어 지속적으로 [[의례활동|제례]]를 행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베스샤티르 대형 고분은 무덤군의 동북부에 위치한다. 규모는 지름 104m, 높이 15m이며, 봉분의 꼭대기는 잘린 원뿔 모양이며 지름은 32m이다. 축조 방법은 돌무지와 점토를 3~16개의 층으로 교대로 쌓고(積石), 외형은 돌무지로 덮었다. 바닥 부분은 돌무지 층을 피라미드처럼 층층이 쌓아서 붕괴를 방지했다. 봉분 주변에는 [[선돌|선돌(立石)]] 수십 개가 늘어서 있었다. 대형 고분인 1호분은 다른 고분보다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지름 52m, 높이 7.6~8.93m이다. 고분의 내부에는 톈산산맥(天山山脈) 일대에서 흔히 자라는 가문비나무로 널길(羨道)을 만들었고, 그 안에 거대한 나무방(木室)을 만들어 나무관(木棺)을 안치했다. 나무 방은 크게 널길, 전실(前室)과 현실(玄室)로 구성되어 있다. 널길은 덮개가 없는 시설로, 길이 5.75m, 너비 1.5m, 높이 5m이다. 무덤방은 길이 3.6m, 너비 3.3m로 정방형에 가깝고 높이는 4m이다. 고분 대부분이 도굴되어 전반적인 양상은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베스샤티르 고분의 축조 정황을 통해 제티수 일대의 고대 고분 축조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베스샤티르 대형 고분의 경우 약 50,000㎥의 진흙과 돌이 필요하며, 나무 관을 만드는데 사용된 낙엽송은 200~250㎞ 정도 떨어진 자일리스키 알라타우(Заилийский Алатау)에서 온 것도 있다. 즉, 이 정도의 거대한 고분을 축조하기 위한 사회가 존재하려면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베스샤티르 고분의 축조 방식은 알라타우의 [[보랄다이고분|보랄다이 고분(Могильник Боралдай)]], [[이시크고분군|이시크 고분군]], [[실릭티고분군|실릭티 고분군]] 등과 유사하여 당시 사카 문화 안에서 [[쿠르간|쿠르간]]의 축조 집단이 정비되어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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