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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복산리 마산 고인돌군[麗水 福山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이칭별칭=여수 복산리 마산 고인돌군, 마산·화동 유적 | 키워드=[[고인돌]], [[돌덧널형 무덤방]], [[자루 간 돌검]], [[통자루 간 돌검]], [[상평통보]]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오세미 | 성격=고인돌 | 소재지=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산164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산164 일원에 위치한다. 현천-마산 간 도로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06~2007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5기의 [[고인돌|고인돌]](다군)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마산 마을에서 덕곡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있으며, 이 일대는 해발 183~215m 정도이다. 고인돌은 [[덮개돌|덮개돌(上石)]]과 하부 구조가 모두 남아 있는 것 1기와 덮개돌만 남아 있는 것 2기,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것 2기이다. 1호 고인돌은 군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깝다. 덮개돌과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북서-남동이다. [[무덤방|무덤방(墓室)]]과 받침돌(支石) 사이에는 깬돌(割石)을 깔아 받침돌과 함께 덮개돌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였다. 무덤방은 [[돌덧널형무덤방|돌덧널형(石槨形)]]이며, 바닥에는 작은 깬돌(割石)을 촘촘하게 깔았다. 2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평면 형태가 부정형이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북서-남동이다. 2-1호 고인돌은 무덤방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바닥석 일부만 남아 있다. 무덤방은 돌덧널형으로 추정되며, 장축 방향은 남-북인데, 주변이 심하게 교란되었다. 3호 고인돌은 덮개돌만 남아 있는데, 이동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방형이다. 4호 고인돌의 무덤방은 돌덧널형이며, 장축 방향은 북서-남동이다. 바닥은 양 짧은 벽 쪽에만 작은 깬돌을 촘촘하게 깔았다. 2-1호 고인돌 주변에서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수습되었다. 4호 고인돌 바닥 중앙에서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 위치로 보아 시신을 안치한 후 피장자의 허리 쪽에 부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1호와 3호 덮개돌 아래에서는 [[상평통보|상평통보(常平通寶)]]가 수습되었다. 복산리 고인돌군은 무덤방이 모두 돌덧널형이며, 통자루 간 돌검이 부장되었다는 점에서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고인돌 아래에서 상평통보가 확인되어 고인돌이 후대에도 [[거석숭배|거석 숭배]]나 신앙과 관련한 상징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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