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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후산리 고인돌군[龍岡 後山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후산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룡강 후산리 고인돌군, 룡강 후산리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평안남도 룡강군 룡강읍 후산리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오덕형]], [[침촌형]], [[돌대팻날]], [[슴베 간 돌살촉]]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설명== 평안남도 룡강군 룡강읍 후산리에 위치한다. 1961년에 발굴 조사되었으며, 150여 기의 [[고인돌|고인돌]]이 3~4기를 단위로 넓은 지역에 분포한다. 이 고인돌군에는 [[탁자식고인돌|오덕형]]과 [[침촌형고인돌|침촌형]]이 섞여 있다. 10호 고인돌은 덮개돌(上石) 크기가 길이 3.5m, 너비 2.3m, 두께 5m이며, 받침돌(支石)과 막음돌(閉塞石)로 무덤방(墓室)을 만들었다. 무덤방의 크기는 길이 1.3m, 너비 0.7~0.8m로, 바닥에 막돌을 한 벌 깔았는데 그 위에서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등 [[껴묻거리|껴묻거리]]가 확인되었다. 12호의 덮개돌은 길이 4m, 너비 2.8m, 두께 0.4m로 그 아래 돌과 흙이 섞인 퇴적층이 있고 다시 0.3m 정도의 깊이에 화강암 재질의 판돌(板石) 11매가 전면에 한 벌 깔려 있다. 판돌 아래 점토층이 있고 그 아래 0.2m 깊이에서 서쪽 벽을 제외한 세 벽을 따라 폭 0.2m의 부식토 구획이 나타났다. 이는 받침돌을 묻기 위해 땅을 파낸 것이며, 이 부식토 상층에서 슴베 간 돌살촉 4점이 출토되었다. 고인돌군에서 150m 쯤 떨어진 곳에는 고인돌을 만든 돌을 떼어온 채석장이 있으며 돌을 떼기 위해 구멍을 뚫어 놓은 자리가 남아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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