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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환호(環濠)}}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환호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유적=울주 검단리 유적, 울주 방기리 유적, 울주 천상리 유적, 진주 대평리 옥방 유적, 진주 가호동 유적, 산청 사월리 유적, 대구 팔달동 유적, 청주 대율리 유적, 춘천 중도동 유적 | 키워드=[[도랑]], [[목책]], [[토루]], [[환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형원 }} ==설명==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의 환호(環濠)는 마을을 방어하거나 구획하기 위해서 흙을 파내서 [[구|도랑]]을 만든 시설이다. 환호의 형태는 타원형과 방형이 많으며 거주 공간의 외곽에 도랑을 파서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환호가 자리 잡은 곳의 지형은 구릉의 정상부나 사면, 그리고 강변 충적지의 평지에 해당한다. 환호와 비슷한 형태인 [[환구|환구(環溝)]]는 주거 공간을 에워싸지 않는 (타)원형 또는 방형의 도랑으로 구획된 시설로서 광장이나 의례 공간의 성격을 갖는다. 환호는 [[목책|목책(木柵)]]이나 [[토루|토루(土壘)]]와 함께 방어의 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을 집단의 내부 결속과 다른 집단과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 만든 경계시설로 이해하는 견해가 많다. 거주역을 보호하는 방어용의 환호 유적들은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던 집단들이 방어를 위해 가장 유리한 지역을 선택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들의 존재를 가시적으로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거나 혹은 다른 지역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역을 택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화는 환호의 축조를 통해 강조되었던 공동체 의식의 강조와 이를 통한 집단 내부의 권력 행사가 주변 지역에 대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리고 주변 지역을 가시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한국에서 환호는 1991년 [[울주검단리유적|울산 검단리 유적]]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이후 [[울주방기리유적|울산 방기리]], [[울주천상리유적|울산 천상리]], [[진주대평리옥방유적|진주 대평리]], [[진주가호동유적|진주 가호동]], [[산청사월리유적|산청 사월리]], 창원 남산, [[대구팔달동유적|대구 팔달동]] 유적 등 영남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남 이외 지역에서는 [[청주대율리유적|청원 대율리 유적]]과 [[춘천중도동유적|춘천 중도동 유적]]의 사례가 주목된다. 청원 대율리 유적의 환호는 기원전 13-12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청동기 시대의 환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며 마을 외곽을 두르는 외(外) 환호와 가옥의 위계에 따라 가옥군 별로 경계를 구획하는 내(內) 환호가 함께 조영되었다. 환호는 대부분 타원형 평면을 띠고 있지만, 춘천 중도동 유적과 진주 대평리 유적과 같은 강변 충적지의 대형 중심 마을에서는 특징적으로 방형의 환호가 확인된다. 방형 평면의 환호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중도동 유적은 전체적으로 장방형을 띠지만 북동쪽 모서리 부분은 돌출된 형태이다. 길이 121.6m, 너비 87.2m이며, 총 둘레 403.7m, 내부 면적 9,516㎡(2,878평)이다. 환호의 잔존 너비는 대체로 2m 내외(1.7~2.5m)이며, 잔존 깊이는 출입부와 서쪽 구간이 0.5m로 얕은 편이나 남쪽 구간은 0.75~0.95m로 깊다. 단면 형태는 깊이가 얕은 구간이 ‘U’자 모양이고 깊이가 깊은 구간에서는 하부 ‘U’자 모양이 상부로 가면서 ‘V’자 모양으로 벌어진다. 환호의 서쪽과 남쪽, 동쪽의 3곳에는 도랑이 단절되는 부분이 있는데 ‘육교부(陸橋部)’라 불리기도 하며 출입구로 이용된 곳이다. 출입구의 폭은 서쪽이 1.3m, 남쪽이 1m이며 동쪽은 일부 파괴되었는데 나머지 출입구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주 대평리 유적에서는 옥방 1·7지구에서 4기, 옥방 4지구에서 1기 등 모두 5기의 환호가 확인되었다. 이 환호들은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 방형이며 이 가운데 가운데 2기는 이중(二重) 환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중도동 유적과 대평리 유적은 강변 충적지에 형성된 대규모 중심 마을이고 환호의 형태가 방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반해 울산 검단리 유적 등 구릉상에 조영된 환호는 대부분 타원형이다. 진주 대평리 옥방 1·7지구의 환호 4기 가운데 제3호 및 제4호 환호는 내측에 목책 열이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구간이 있으며, 옥방 1·7지구 제3호 및 옥방 4지구의 이중 환호는 내호와 외호 사이에 토루(土壘)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상정되고 있어 방어용으로 기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도동 유적 역시 최상위 중심 마을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유적의 환호도 방어 기능을 겸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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