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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하도리 고인돌군[江華 下道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하도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강화 하도리 고인돌군, 강화 하도리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 187-1·611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탁자식]], [[덮개식]]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강동석 }} ==설명==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 187-1·611 일원에 위치한다. 최초의 조사는 1916년 조선총독부 고적 조사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강화도 고려산의 동쪽 산기슭 아랫 부분에 축조되었는데, 간척 평야와 접한 곳이다. 하도리 611(오류내)에 3기, 하도리 187-1(아랫말)에 5기가 남아 있다. 하도리 611 [[고인돌|고인돌]]은 대부분 파손되었으며, 187-1에 위치한 1기를 제외하고는 원래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도리187-1(아랫말) 5호 고인돌은 [[탁자식고인돌|탁자식]]으로 장축은 북서-남동 방향이며, 덮개돌(上石)은 길이 2.62m, 너비 1.95m, 두께 0.65m이다. 무덤방(墓室)의 형태는 남아 있는 짧은 벽 상태로 보아 ‘ᄑ’자 모양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주변으로 4기의 고인돌이 분포한다. 모두 [[개석식고인돌|덮개식(蓋石式)]]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에는 덮개돌 아래 받침돌(支石)로 추정되는 긴 판돌(板石)이 일부 노출된 것도 있어 탁자식으로 볼 수도 있다. 하도리 고인돌은 해안가와 접한 곳에 축조되어 주로 작은 하천 옆이나 구릉에 분포하고 있는 인근의 고인돌 소군집들과 차별성을 보인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지표조사 || None || 강화도 고인돌군 || 1999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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