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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플라스크 모양 붉은 간 토기[플라스크形赤色磨硏土器]}}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플라스크 모양 붉은 간 토기 | 이칭별칭=플라스크형 적색마연토기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지역=금강 유역 | 관련 유적=부여 송국리 유적 | 키워드=[[송국리 단계]], [[집자리]], [[구덩이]], [[의례 용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설명== 플라스크 모양 붉은 간 토기는 ‘C’자 모양의 목 아래에 어깨 부분이 형성되며, 특히 둥근 바닥(圓底) 혹은 그에 가까운 말각의 편평한 바닥(平底)에서 뚜렷하게 꺾이면서 몸통 하단부로 이어지는 모양의 토기를 가리킨다. 바닥 부분의 모양이 특이하여 토기를 만들 때 지지대와 같은 틀을 이용하였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1970년대에 [[부여송국리유적|부여 송국리 유적]]의 발굴 조사를 통해 처음 알려진 이래 독특한 기형 때문에 많은 주목을 끌었고, 송국리식 집자리 및 송국리식 토기 등과 더불어 송국리 유형의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이 토기의 발생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대동강 유역 [[미송리식토기|미송리식 토기(美松里式土器)]]의 영향이라는 견해로써 기형의 유사성과 함께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을 동반한다는 점이 주요한 근거이다. 이에 비해 무늬와 손잡이(把手)가 없는 점에서 미송리식 토기와는 차이가 크고 남한 지역에서 유사한 기형이 출토되기 때문에 재지의 [[붉은간토기항아리|붉은 간 토기 항아리(赤色磨硏壺)]]에서 변화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플라스크 모양 붉은 간 토기는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의 늦은 시기인 [[송국리단계|송국리 단계]]에만 제작되고 송국리를 중심으로 한 금강 유역에 밀집되어 시·공간적으로 매우 한정된 분포를 보인다. 이렇게 한정된 지역에서 분포하는 토기로는 [[가지무늬토기|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나 [[함안식붉은간토기|함안식 붉은 간 토기(咸安式赤色磨硏土器)]] 등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무덤에서 출토된다. 이에 비해 플라스크 모양 붉은 간 토기는 [[집자리|집자리]]와 [[구덩이|구덩이(竪穴)]]에서만 출토되어, 저장 혹은 그와 관련된 [[의례용기|의례 용기(儀禮用器)]]일 가능성도 고려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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