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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청동 단추[銅泡]}}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청동 단추 | 이칭별칭=(청)동포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유적=궈자좡 유적, 룽터우산 유적, 정자와쯔 유적, 용천 신암리 유적, 강계 풍룡동 돌널무덤, 봉산 신흥동 유적, 나진 초도 유적, 무산 호곡동 유적, 온양 삼봉리 유적 | 키워드=[[장신구류]], [[말갖춤류]], [[안드로노보 문화]], [[샤자뎬 상층 문화]], [[스얼타이잉쯔 문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오강원 }} ==설명== 모자, 의복, 신발, 말 띠 등에 부착하는 장식으로 일반적으로 신체에 장식되는 것을 [[장신구|장신구류]], 말에 장식되는 것을 [[말갖춤|말갖춤류(馬具類)]]로 구분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기원전 18~15세기 시베리아의 [[안드로노보문화|안드로노보 문화(Андроновская культура)]]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중국의 경우에는 기원전 12세기 전후의 허난성(河南省) 안양(安陽) [[궈자좡51호거마갱|궈자좡(郭家庄) 51호 거마갱(車馬坑)]]과 기원전 11~10세기의 네이멍구 자치구 커스커텅기(克什克騰旗) [[룽터우산1호돌널무덤|룽터우산(龍頭山) 1호 돌덧널무덤(石槨墓)]] 출토 예가 이른 시기에 속한다. 청동 단추 장식(銅泡飾)은 지름 2~5㎝로 원형의 단추모양 낱개 장식을 기본으로 하며, 여기에 여러 형태의 장식적인 요소가 추가되어 다양한 형태가 제작되었다. 낱개의 단주형(單珠形), 두 개 이상이 연결되어 있는 연주형(連珠形), 그 하단에 꼬리 모양의 장식이 부가되어 있는 쌍미형(雙尾形) 등이 있다. 이 밖에 단면 형태에 따라 단추의 정면이 바깥쪽으로 불룩하게 튀어 나와 있는 것, 납작한 것, 오목한 것으로, 단추 걸이에 따라 꼭지가 하나 달린 단구형(單瞿形), 꼭지 여러개 달린 다구형(多瞿形) 등으로 분류된다. 단주형은 동북아시아 전 지역에서 발견되어 지역성을 논하기가 어렵지만, 쌍미형과 연주형은 그 분포가 한정되어 강한 지역성이 나타난다. 중국 북방 장성 지대에서 주로 확인되며 네이멍구 자치구 동남부의 [[샤자뎬상층문화|샤자뎬 상층 문화(夏家店上層文化)]]를 대표하는 유물 중의 하나이다. 또한 청동 단추 장식은 [[스얼타이잉쯔문화|스얼타이잉쯔 문화(十二臺營子文化)]]에 속한 차오양(朝陽)이나 선양(瀋陽) 일대에서 간혹 보이지만 크게 유행하지 못하였다. 다만 [[정자와쯔6512호무덤|선양 정자와쯔(鄭家窪子)6512호 무덤]] 에서 남아 있는 노년 남성 뼈의 다리와 발주위에서 가죽 장화를 장식했던 청동 단추 180개가 출토되어 주목된 바 있다. 한반도에서는 중국 동북 지역이나 연해주와 관련된 초원 계통의 청동 단추가 북한 지역에서 일부 확인되는데 비교적 다양한 형태의 단주형 청동 단추 장식이다. 기원전 12~9세기경에 해당되는 [[용천신암리3지점2문화층|의주(용천) 신암리 3지점 2문화층]]과 [[강계풍룡동돌널무덤|강계(시중) 풍룡리 돌널무덤(石棺墓)]], [[봉산신흥동7호집자리|봉산 신흥동 7호 집자리]], [[나진초도유적|나진 초도 유적]], [[무산호곡동유적|무산 호곡동 유적]], 온성 삼봉리 유적 거푸집(鎔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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