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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방축리 유적(平澤 防築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평택 방축리 유적 | 키워드=[[간 돌검]], [[돌살촉]], [[집자리]]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하문식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집자리 | 소재지=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방축리 298-8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방축리 298-8 일원에 위치한다. 1982년 도로 공사 과정에서 [[간돌검|간 돌검]]과 [[돌살촉|돌살촉(石鏃)]]이 발견된 곳으로, 2002년에 발굴이 진행되어 6m 거리를 두고 2기씩 서로 겹쳐져 있는 [[집자리|집자리]] 4기가 확인 되었다. 주변에는 해발 35~40m 되는 낮은 구릉 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3·4호)과 말각 방형(1·2호)으로 크게 구분된다. 바닥은 모두 맨바닥을 다진 상태인데 이 지역의 토양은 점성이 강한 찰흙이기 때문에 원형 단단하다. [[화덕자리|화덕 자리]]는 바닥면을 10㎝ 안팎으로 움푹하게 파서 만든 구덩식(竪穴式)이며 이곳에서 많은 숯과 불탄 흙이 발견되었다. 기둥 구멍이나 출입 시설, 벽체 시설(壁體施設)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3호의 경우 지형 조건을 고려하면 출입구는 동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2호의 남서쪽 벽 옆에서는 벽 도랑(壁溝)인 것으로 보이는 긴 홈이 있다. 유물은 간 돌검, 돌살촉, [[돌도끼|돌도끼(石斧)]],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반달돌칼|반달 돌칼]] 등의 석기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3호와 4호 집자리에서 나온 민무늬 토기의 바닥과 몸통에는 ‘X’자 무늬가 뚜렷이 새겨져 있어 주목된다. 1982년에 출토된 간 돌검은 통자루식(一段柄式)이며 길이가 38㎝ 가량으로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720±40 BP, 2700±40 BP, 2750±40 BP, 2890±40 BP, 2630±50 BP의 값을 얻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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