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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천상리 유적(蔚州 川上里垈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천상리 유적 | 이칭별칭=울주 천상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천상리 268, 527-1, 674, 산47-4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환호]], [[도랑]],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바리 토기]], [[구멍무늬]], [[가로줄 무늬]], [[검단리식 집자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정대봉, 하진호, 황창한 }}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천상리 268, 527-1, 674, 산47-4 일원에 위치한다. 천상·선암 정수장 건설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9·2000년 조사하여(천상리 취락 유적), [[집자리|집자리]] 43기, [[환호|환호(環濠)]] 1기, [[구|도랑(溝)]] 2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울산문화재연구원에서 천상초·중학교 건립으로 2003년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여(천상리 평천 유적), Ⅱ지구에서 집자리 4기, Ⅲ지구에서 집자리 1기 및 [[삼국시대|삼국]]~[[조선시대|조선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공동 주택 신축으로 2006년 조사하여(천상리 대동 유적), 집자리 5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의 서쪽에는 태화강이 급격하게 곡류하며, 하천 주변으로 형성된 하안단구가 형성되었으며, 유적은 반경 500m 거리에 분포한다. 천상리 취락 유적(천상리 527-1)의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이며, 면적은 5㎡(34호)~36.39㎡(22호)이다. 34호는 방형으로 길이 2.5m, 너비 2m, 깊이 0.4m이며, 장방형인 1호는 길이 7.17m, 너비 4m, 깊이 0.44m, 22호는 길이 7.55m, 너비 4.82m, 깊이 0.6m이다. 내부 시설은 [[기둥구멍|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 자리]], [[벽도랑|벽 도랑(壁溝)]]이 설치되었다. 기둥 구멍의 배치는 집자리의 크기에 따라 4주식(柱式) 11기, 6주식 10기, 8주식 3기가 확인되었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竪穴式)으로 방형은 중앙, 장방형은 한쪽에 치우쳐 1개씩 설치하였으나 23호는 2개가 확인되었다. 대부분 집자리 경사면 위쪽으로 벽 도랑이 위치하며, 22호는 벽 도랑 내에 기둥 구멍이 조밀하게 설치되었다. 환호는 자연 지형과 마을의 분포를 고려해서 조성되었다. 구릉 사면의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동남지역은 ‘U’자 모양의 환호를 설치하였지만, 서남지역은 자연경사면을 절취하여 환호의 기능을 대신하도록 하였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로 무늬는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구멍무늬 짧은 빗금무늬, [[가로줄무늬|가로줄 무늬(橫線文)]]가 확인 된다. 석기류는 [[통슴베간돌살촉|통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턱슴베간돌살촉|턱 슴베 간 돌살촉(二段莖式磨製石鏃)]], 물고기 모양(魚形) 및 배 모양(舟形)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도끼|돌도끼(石斧)]], 흙으로 만든 [[그물추|그물추]]와 [[가락바퀴|가락바퀴]]도 출토되었다. 집자리 간 시기 차이는 확인되지 않지만, 유구의 중복 관계, 구릉 상에 입지한 집자리의 배치 상태, 출토 유물, 내부 구조 등을 통해 환호 설치 이전의 시기는 [[울주검단리유적|검단리 유적]]의 Ⅰ기 보다 앞선 시기(Ⅰ기), 환호 설치 시기는 검단리 유적 환호 시기보다 다소 앞선 시기(Ⅱ기)로 구분이 가능하다. 유적은 마을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의 주거군 구성 방식이 3~5기의 집자리가 모인 형태로 몇 개의 주거군이 광장(廣場)을 중심으로 환상(環狀)으로 배치되며, 그 둘레에 환호가 돌아가고 있다. 각 시기의 주거군 내 대형 또는 중형 집자리는 모두 광장 가까이에 위치한다. Ⅰ기의 구릉 중앙부만 점유하던 마을이 Ⅱ기에 들어서면 구릉 전체를 주거공간으로 활용하며 취락 전체를 감싸는 환호를 설치한다. Ⅰ기에는 취락 전체에서 뚜렷한 우위를 점유하는 개별 주거군이나 특정 개인은 확인되지 않는다. Ⅱ기 대형 집자리를 중심으로 복수의 세대공동체를 가진 주거군이 마을을 주도해 가며 마을 중심지로 기능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Ⅰ기와 Ⅱ기의 마을은 구릉 중앙의 공지를 계속 활용하면서 마을이 변천하고 있으므로, 단절적인 관계가 아니라 연속적인 관계로 생각된다. 천상리 평천 유적(천상리 674, 산47-4)의 집자리는 방형이며 각각 30m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다. 기둥 구멍은 확인되지 않으며, 바닥에 벽을 따라 벽 도랑이 돌아간다. 벽 도랑은 집자리 바깥으로 연장되는 것도 있으나 내부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다. 화덕 자리는 얕은 구덩식과 바닥을 그대로 이용한 평지식이 있다. 집자리 중 2기에서 화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2기 중 1기는 화재 이후 돌로 덮어 집자리 폐기시 의례적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갈판|갈판(耉石)]] 등이 출토되었다. 천상리 대동 유적(천상리 268)의 집자리는 대부분 훼손되었다. 1호는 장방형으로 길이 5.2m, 너비 3.7m, 깊이 0.2m의 전형적인 [[검단리식집자리|검단리식 집자리]]이다. 내부에는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이 설치되었고, 한쪽 모서리에는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기둥 구멍은 6주식이며 화덕 자리는 구덩식으로 짧은 벽 쪽에 치우쳐 확인되었다. 배수구는 동쪽 벽의 모서리에 설치되었고 길이 4.8m, 너비 0.4m, 깊이 0.2m이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 가락바퀴, 간 돌살촉,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집자리의 형태, 출토 유물 등으로 볼 때,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한다. 유적은 청동기 시대 태화강 중·상류 지역의 취락 및 생업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천상리 취락 유적은 취락의 변화를 시기별로 나타내는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99년 06월 11일~2000년 05월 28일 || 울산 천상리취락유적 || 2002 || 영남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3년 02월 03일~2003년 11월 19일 || 울산천상리평천유적 || 2005 || 울산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6년 09월 11일~2006년 11월 07일 || 울산 천상리 대동유적 || 2008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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