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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척령리 유적(寶城 尺嶺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척령리 유적 | 이칭별칭=보성 척령리 유적, 보성 금평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척령리 144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조개더미]], [[집자리]], [[구덩이]], [[송국리식 집자리]], [[모룻돌]], [[민무늬 토기]], [[슴베 간 돌살촉]], [[구멍무늬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조진선 }} ==설명==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척령리 144 일원에 위치한다. 보성-벌교 간 국도 확·포장공사구간에 포함되어 1992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원삼국 시대 [[패총|조개더미(貝塚)]] 아래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1기와 원삼국 시대 집자리 3기, [[구덩이|구덩이(竪穴)]] 2기, 도랑(溝) 3기가 확인되었다. 금평 마을은 칠동천 주변에 형성된 좁고 긴 곡간 평지의 북쪽에 자리한다. 벌교만에서 2㎞ 정도 떨어져 있지만 마을 앞 들녘이 해발 4~5m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 바로 인근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적은 마을 남동쪽에 있는 해발 28m인 작은 동산의 북쪽 기슭에 있다. 1호 집자리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으로 원삼국 시대 조개더미의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다. 반파된 상태인데 어깨선이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 지름 4.4m 정도의 원형으로 복원되며 면적은 15㎡ 정도로 추정된다. 집자리가 경사지에 자리하기 때문에 깊이 차이가 심한데 구릉 위쪽인 남서쪽을 기준으로 하면 최고 0.9m에 이른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바닥 중앙에서 서북쪽으로 약간 치우쳐 양끝에 기둥 구멍이 있는 타원형 구덩이가 있다.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 방향은 서북-동남쪽이며 크기는 길이 1m, 너비 0.6m, 깊이 0.2m 정도이다. 기둥 구멍은 지름 0.18m, 깊이 0.6m 정도이다. 타원형 구덩이 안에는 서북쪽으로 약간 치우쳐 길이 0.3m, 너비 0.28m, 두께 0.1m 정도의 편평한 [[모룻돌|모룻돌(臺石)]] 1매가 놓여 있으며, 집자리의 바닥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10여 점과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1점이 출토되었다. 민무늬 토기 편 가운데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편이 섞여있는데 구멍은 안에서 밖으로 뚫은 것으로 관통하지는 않았다. 기둥 구멍에서 수습된 숯으로 측정한 방사성 탄소 연대는 2370±100 BP(보정 연대 기원전 770~340년)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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