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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창평동 환호 유적(蔚山 倉坪洞環濠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창평동 환호 유적 | 이칭별칭=울산 창평동 환호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울산광역시 북구 창평동 26-6, 산46-10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환호]], [[민무늬 토기]], [[조갯날 돌도끼]], [[그물추]], [[검단리 유형]], [[바리 토기]], [[간 돌검]], [[반달 돌칼]], [[돌도끼]], [[가락바퀴]], [[숫돌]], [[돌도끼]], [[기둥 모양 돌자귀]], [[홈자귀]], [[돌대팻날]], [[검단리식 집자리]], [[통자루 간 돌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황창한 }} ==설명== 울산광역시 북구 창평동 26-6, 산46-10 일원에 위치한다. 울산-포항 복선 전철 제1공구 건설 구간으로, 2014년 A·B구역으로 나누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4기, [[구덩이|구덩이(竪穴)]] 35기, [[환호|환호]] 1기를 확인하였다. 집자리는 A구역에서 3기, B구역에서 1기가 확인되었다. A구역의 경우 해발 77~84m의 구릉에 일렬로 분포하며, 1·2호는 환호 내부, 3호는 외부에 위치한다. 1호는 방형이며, 길이 4.04m, 너비 3.06m, 면적 14.5㎡로 소형이다. 내부 시설은 [[무시설식화덕자리|무시설식 화덕 자리]], 4주식(柱式)의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도랑|벽 도랑(壁溝)]], 배수구가 확인되었다. 1호는 벽 도랑과 배수구가 연결되며, 2·3호는 집자리 아래쪽이 유실되어 벽 도랑만 확인된다. 구덩이는 환호 내부에 서로 중복되지 않고 분포하며 크게 5개의 군집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환호의 내부는 작은 능선과 곡부로 이루어지는데, 구덩이는 능선을 따라 분포하지만 북서쪽 지점에는 확인되지 않는다. 일부 2기가 연접하거나, 3기가 열을 이루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정연하게 분포하지 않는다. 구덩이의 형태는 원형, 타원형이고, 규모는 지름 1m 내외, 깊이 0.25m 내외이다. 환호는 동서 방향으로 뻗은 능선 끝자락의 약간 솟은 완만한 사면 구릉(해발 79~88m)에 위치한다. 환호 내부의 지형은 북동쪽의 가장 높은 정상부로부터 작은 능선과 곡부가 남-서 방향의 경사면을 따라 내려간다. 같은 시기에 해당하는 유구의 중복 관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환호는 타원형이며, 북서쪽에 비해 남동쪽이 약간 직선적이며 북동쪽 부근에서 급하게 꺾이는 지점도 있다. 이는 모두 당시의 지형 조건에 맞추어 환호가 굴착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남동쪽은 후대 지형 변경과 유구의 중복 축조로 도랑 일부가 결실된 상태이지만, 남아 있는 형태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는 길이 72.3m, 너비 63.9m이다. 환호가 둘러싼 내부 공간의 면적은 약 3,022㎡, 도랑의 총 길이는 약 197m이다. 도랑의 단면 형태는 ‘V’자 모양이며, 경사가 급한 북서쪽만 ‘U’자 모양이다. 경사면의 가장 아래쪽에 해당하는 남서쪽 주변은 이중으로 굴착되었는데 깊이도 가장 깊다. 도랑은 너비 2.24~5.37m, 깊이 0.35~1.59m이다. 도랑 내부의 층위는 양쪽 측면에서 중심부로 퇴적되는 양상이다. 가장 깊은 곳에서는 도랑이 매몰된 후 경사면 위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굴착한 흔적도 확인된다. 또한 자연적인 퇴적이 진행되고 도랑만 남은 상태에서 불과 관련된 의례 행위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완만한 ‘U’자 모양의 흑갈색층이 확인된다. 남서쪽 경사면 하단부에서 도랑을 굴착하지 않은 출입구 1개소가 확인되며, 북동쪽의 조사 범위 경계 지점에서도 도랑이 끊어지는 부분이 있어 유사한 출입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환호는 경사면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1개씩 총 2개소의 출입구가 갖추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도랑 내부 유물은 바닥에서 0.1~0.3m 정도 뜬 상태로 확인된다. 집중적으로 출토된 범위에 따라 4개의 군집으로 구분되며, 북쪽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 이곳에서 유물과 함께 다량의 석재(石材), 불탄 흙(燒土) 등도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바닥 편이 많은데 완형이거나 접합되는 것은 1점도 없다.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도 측면 일부가 파손된 상태이며, 전체 유물 중 토제 [[그물추|그물추(漁網錘)]] 1점을 제외하면 완형이 거의 없어 환호 폐기 유물의 특징이 보인다. 유물은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한다. 유구별로는 집자리에서 8점, 구덩이에서 42점, 환호에서 83점이 출토되었다. 토기류 중에서 완형은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1점 뿐이며, 나머지는 아가리, 몸통, 손잡이, 바닥 편 등이다. 기종은 항아리 모양이 19점으로 다수이며 바리는 완형을 포함하여 4점이다. 석기류는 [[간돌검|간 돌검]] 1점, [[반달돌칼|반달 돌칼]] 1점, [[돌도끼|돌도끼]] 4점, [[가락바퀴|가락바퀴]] 4점, [[숫돌|숫돌(砥石)]] 1점이다. [[돌도끼|돌도끼]]는 조갯날 돌도끼, [[기둥모양돌자귀|기둥 모양 돌자귀]],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이 각 1점 씩이다. 그물추는 모두 토제이다. 유적의 성격은 환호와 구덩이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환호는 방어용으로도 볼 수 있지만, 유적에서는 집자리의 수는 적은 반면 환호 내부에 많은 구덩이가 확인되었고, 유구 간 중복되어 조성된 예도 없으며 내부에서는 고의로 파손시킨 토기가 출토되었다. 즉, 창평동 유적의 환호는 의례적 성격을 가진 제장으로 생각된다. 유적의 시기는 전형적인 [[검단리식집자리|검단리식 집자리]]와 환호에서 [[낟알무늬|낟알무늬(突瘤文)]]가 새겨진 토기, [[꼭지형손잡이달린토기|꼭지형 손잡이 달린 토기]],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삼각형에 가까운 개량형 돌칼, 횡단면 타원형의 조갯날 돌도끼, 홈자귀와 돌대팻날, 단추형·원통형·구슬형의 토제 그물추 등이 출토되어 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한다. 유구 간에 특별한 중복이 확인되지 않아 유적의 존속 시기는 짧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평동 환호 유적은 환호 내부에서 많은 구덩이가 조사되어, 환호의 성격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13년 05월 29일~2016년 09월 13일 || 울산 창평동 환호 유적 || 2018 || 한국고고환경연구소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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