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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조양동 유적(慶州 朝陽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조양동 유적 | 이칭별칭=경주 조양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641-1 일원 | 성격=집자리 | 키워드=[[집자리]], [[화덕자리]], [[벽 도랑]],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구멍무늬 토기]], [[조갯날 돌도끼]], [[외날 돌도끼]], [[반달 돌칼]], [[뚜껑 있는 굽다리 긴 목 항아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도현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641-1 일원에 위치한다. 1977년 주택 개축 과정에서 [[뚜껑있는굽다리긴목항아리|뚜껑 있는 굽다리 긴 목 항아리(有蓋臺附長頸壺)]]를 발견한 주민의 신고로 처음 알려졌다. 이후 1979~1983년까지 5차례 조사되었으며,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구는 3~5차 조사에서 [[집자리|집자리]] 3기를 확인하였다. 이외에 [[원삼국시대|원삼국]]~[[삼국시대|삼국 시대]] 무덤이 다수 조사되었다. 유적은 동고서저형 지형으로, 동쪽 산지일대의 소하천은 서쪽으로 흘러내려 형산강의 지류에 합류한다. 집자리(19·39·61호)는 방형 1기, 장방형 1기로, 1기는 후대 훼손으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19호는 길이 7.62m, 너비 5.13m, 61호는 길이 4.85m, 너비 4.05m이다. 내부 시설은 벽 기둥 구멍, 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 자리]]를 갖추고 있고, 61호는 [[벽도랑|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61호는 4주식(柱式)이며, 19호는 정형성이 없다. 화덕 자리는 구덩이를 얕게 파서 만들었다.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편, 손잡이가 부착된 항아리 모양 토기도 같이 확인되었다. 61호에서는 반투공된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가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외날돌도끼|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반달돌칼|반달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79년~1983년 || 경주 조양동 유적Ⅱ || 2003 || 국립경주박물관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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