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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제사 유구(祭祀遺構)}}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제사 유구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유적=부천 고강동 유적, 안성 반제리 유적, 화성 쌍송리·석교리 유적, 화성 정문리 유적, 하남 덕풍동 유적, 산청 묵곡리 유적, 진주 상촌리 유적, 대구 동천동 유적, 마산 가포동 유적, 합천 영창리 유적, 남원 대곡리 바위그림, 경주 석장동 바위그림, 고령 양전동 바위그림, 고령 안화리 바위그림, 영주 가흥동 바위그림, 영천 보성리 바위그림 | 키워드=[[환호]], [[매납 유구]], [[바위 그림]], [[고인돌]], [[우물]]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서길덕 }} ==설명== [[제사|제사]]는 특정한 대상을 향해 기원하거나 정성을 나타내는 의식이다. 따라서 제사 유구는 이러한 의식이 거행되었던 곳이나 흔적에 해당한다. 제사의 특정한 대상은 태양, 하늘, 바다, 바위, 나무 등과 같은 자연물이거나 신이나 죽은 사람의 넋, 조상과 같이 인간이 생각하는 혼령과 신령이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유구의 입지는 제사의 대상과 목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경우 하늘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산꼭대기에서, 바다를 대상으로 풍어(豐漁)를 기원하는 경우 해변에서 제사 유구가 확인된다. 마찬가지로 수변제사(水邊祭祀), 우물 제사 등도 제사의 목적과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장소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제사 의식도 장소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행위 흔적, 다양한 공헌물로 나타난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제사 유구가 확인된 곳은 크게 산, 언덕, 충적 대지, 해변, 강변, 바위, 돌무지, [[고인돌|고인돌]], [[우물|우물]] 등이 있다. 산꼭대기나 언덕마루에서 발견되는 제사 유구는 대표적으로 [[부천고강동유적|부천 고강동]], [[안성반제리유적|안성 반제리]], [[화성쌍송리.석교리유적|화성 쌍송리]], [[화성정문리유적|화성 정문리 유적]] 등의 [[환호|환호]]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환호는 대부분 좁은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둘레에 도랑을 판 형태로, 전체적인 양상이 방어가 아닌 의례나 제사를 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천 고강동 유적의 환호 가운데에는 돌무지 유구가 있으며, 안성 반제리 유적의 환호는 자연 바위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 환호 내부에서 반원형을 띤 20개의 작은 [[구덩이|구덩이]]가 발견된 바 있다. 반원형의 구덩이 열은 긴 장대를 땅에 박아 그 끝에 깃과 같은 장식을 달아서 신성한 공간으로서의 표징을 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산꼭대기의 제사 바위로 추정되는 곳은 대표적으로 [[하남덕풍동유적|하남 덕풍동 유적]]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산꼭대기의 커다란 바위들과 추정 계단 시설 및 제단 시설, 석축 시설 등이 확인되었고 주위에서 다량의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조각들이 찾아진 바 있다. 강변의 충적 대지에 위치한 제사 유구는 대표적으로 [[산청묵곡리유적|산청 묵곡리 유적]]을 예로 들 수 있다. 묵곡리 유적의 좁다란 도랑 속에서는 인위적으로 깨트린 토기 조각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는데 유물 수량만 약 3만점에 이른다. 이밖에 [[진주상촌리유적|진주 상촌리]], [[대구동천동유적|대구 동천동 유적]] 등에서도 비슷한 양상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해변의 제사 유구는 매납 유적으로 잘 알려진 [[마산가포동유적|마산 가포동 유적]]을 예로 들 수 있다. 유적이 자리한 곳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해안의 급경사면으로, 바위틈에서 [[세형동검|세형동검]], [[청동투겁창|청동 투겁창]], [[청동꺾창|청동 꺾창]], 민무늬 토기 편이 매납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바위틈이나 돌무지 또는 구덩이에서 청동기가 발견된 사례는 청도 예전동, 성주 초전면, 영암 신연리, 산청 백운리, 완주 상림리, 삼천포 마도동, [[합천영창리유적|합천 영창리 유적]] 등 대부분 [[매납유구|매납 유구]]로 불리고 있으며 그 성격에 대해 지배 계층이 거행한 제사 의식의 산물로 해석하고 있다. [[바위그림|바위그림]]이 새겨진 수직암면, 바위, 고인돌, 입석 등도 제사 의식이 거행되었던 제장이라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남원대곡리바위그림|남원 대곡리]], [[경주안심리바위그림|경주 안심리]], [[경주석장동바위그림|경주 석장동]], [[고령양전동바위그림|고령 양전동]], [[고령안화리바위그림|고령 안화리]], [[영주가흥동바위그림|영주 가흥동]], [[영천보성리바위그림|영천 보성리]] 등에 새겨진 동일한 형태의 패형 암각(貝形岩刻)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무덤은 그 자체로서 제사 의식을 수반하고 있지만 특히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은 당시의 장송 의례가 끝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제장, 또는 제단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한편, 청동기 시대의 우물 제사 흔적은 [[논산마전리유적|논산 마전리 유적]]의 목조 우물이 참고가 된다. 우물 안에서 완형의 [[송국리식토기|송국리식 토기]]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가 출토된 점도 중요하지만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우물 바깥 모서리 부분에서 새 모양의 목제품이 발견된 점이다. 보고자는 우물이 마르지 않고 깨끗한 물이 샘솟기를 기원하고자 우물 굿(井祭)을 치른 흔적으로 보고 있다. 이렇듯 제사 유구는 범위가 넓고 종류도 다양하나 아직 고고학적 자료로 드러난 것은 극히 소수이다. 특히 제사 유구는 고고학적 해석에 한계가 뚜렷한 분야로, 문헌의 검토나 민속의 사례 등이 동시에 비교·검토 되어야 할 성격의 유구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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