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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제대리 유적(密陽 提大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제대리 유적 | 이칭별칭=밀양 제대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183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돌널무덤]], [[붉은 간 토기]], [[슴베 간 돌살촉]], [[가락바퀴]], [[송국리 단계]]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고민정 }} ==설명==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183 일원에 위치한다. 밀양 제대지구 농공단지 조성에 앞서 2008년 조사하여,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6기와 구획 시설(區劃施設) 6기 및 원삼국~조선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유적은 종남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능선의 구릉 말단부와 곡간지에 위치한다. 유적의 북서쪽으로는 [[밀양제대리고인돌군|제대리 고인돌군]]과 인접하며, 남쪽으로는 [[밀양전사포리유적|전사포리 유적]]이 위치한다. 돌널무덤은 유적의 북서쪽 끝부분에 1·2호, 중간 사면부에 3호, 북동쪽 끝부분에 4~6호가 구획 시설과 밀집해서 분포한다. 돌널무덤은 깬돌(割石)을 쌓거나 판돌(板石)을 세워서 벽석(壁石)을 축조하였다. 바닥은 맨땅을 편평하게 정지하거나 판돌 혹은 깬돌을 바닥 전체에 깔았다. 5호는 관 고정석으로 추정되는 깬돌이 있어 [[나무널|나무널(木棺)]]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3호도 판돌과 목재를 혼용하여 ‘ㅍ’자 모양으로 축조하였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판돌과 깬돌을 이용하여 2~3중으로 덮고 주변에는 작은 깬돌로 보강하였다. 내부에서는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항아리,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구획 시설은 대부분 장방형이며, 서로 연접하여 조성되어 있다. 길이 0.2~0.4m의 깬돌로 바깥 면을 정연하게 맞추어 구획하였으며, 내부에는 다시 소구획한 후 깬돌을 깔고, 사이에는 작은 강돌(川石)로 채운 형태이다. 규모는 길이 7.1~11.3m, 너비 5.8~8.2m, 높이 0.4~0.7m이다. 3~6호에서는 길이 1.4~2.2m, 너비 1~2m, 두께 0.6~1.4m 규모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이 확인되었다. 덮개돌 아래와 구획 시설 내부를 조사한 결과 민무늬 토기 편만 소량 출토될 뿐 매장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적의 시기는 출토 유물을 통해 [[송국리단계|송국리 단계]]로 판단된다. [[밀양살내유적|밀양 살내]]·[[밀양신안유적|신안]]·[[밀양사포리유적|사포리]]·[[밀양용지리유적|용지리 유적]]에서도 무덤 혹은 제의 시설로 추정되는 구획 시설이 확인되고 있어, 남해안 일대뿐만 아니라 밀양을 비롯한 내륙 지역에도 [[묘역식고인돌|묘역식 고인돌(墓域式支石墓)]]과 관련성이 있는 구획 시설이 다수 확인됨을 알 수 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8년~2009년 || 밀양 제대리유적Ⅰ·Ⅱ || 2011 || 동양문물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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