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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장수리 고인돌군[高興 長水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장수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고흥 장수리 고인돌군, 장수제 지석묘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장수리 788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바둑판식 고인돌]], [[덮개식 고인돌]], [[자루 간 돌검]],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묘표석 고인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영문 }} ==설명==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장수리 788 일원에 위치한다. 해창만 간척공사로 인한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장수제 공사로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10기를 1984년 국립광주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좁다란 계곡을 따라 하천변에 형성된 퇴적평지에 고인돌 13기가 1열로 분포되어 있고 [[무덤방|무덤방墓室]]들도 하천과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길이 1.1~4.56m, 너비 0.9~2.95m, 두께 0.35~2m 정도이고, 모양은 다양하다. 조사된 10기 가운데 [[매장시설|매장 시설]]이 확인된 것은 8기인데, [[받침돌|받침돌支石]]이 있는 [[기반식고인돌|바둑판식碁盤式 고인돌]]이 4기(1·2·5·9호)이고, 나머지 4기(3·4·6·8호)는 받침돌이 없는 [[개석식고인돌|덮개식蓋石式]]이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덮개돌이 크고 괴석형塊石形인데 반해 덮개식은 두께가 얇고 작은 덮개돌을 사용하였다. 1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43톤을 넘는 거대한 덮개돌인데, 무덤방은 비교적 큰돌로 만들고 보강한 뒤 커다란 받침돌 4매로 덮개돌을 받치게 하였다. 그리고 바둑판식 고인돌 가운데 9호는 거대한 덮개돌 아래에 7매의 받침돌을 돌려서 둥근 돌덧널石槨 형태를 만든 소위 [[돌두름형무덤방|돌 두름형圍石形 무덤방]]을 한 것이다. 3호는 덮개식이며 무덤방 위에 여러 매의 판돌板石을 이용해 [[뚜껑돌|뚜껑돌蓋石]]로 덮고 다시 덮개돌이 올려진 것으로 무덤방 중앙에서 긴 벽쪽에 치우쳐 평행하게 놓인 상태로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은 6호 고인돌에서 짧은 목에 둥근 바닥을 한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1·4·5호 고인돌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들이 발견되었지만 기형은 알 수 없다. 장수리 고인돌은 거대한 바둑판식 고인돌이 한쪽에 치우쳐 있고, 다른 쪽에 무덤방 있는 덮개식 고인돌이 줄지어 배치한 상태로, 이는 [[묘표석 고인돌|묘표석 고인돌]]과 무덤 고인돌이 공존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고인돌 조사 후 장수제 건설로 수몰되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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