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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읍리 고인돌군[莞島 邑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읍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완도 읍리 고인돌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읍리 809-3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겹 뚜껑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신경숙 }} ==설명==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읍리 809-3 일원에 위치한다. 청산도 동남부 보적산(해발 330m) 당락리 서남에 돌출한 구릉 사이로 마을 동쪽 도로변 ‘골기미’, ‘독배기’로 불리는 곳에 [[하마비|하마비(下馬碑)]]와 [[고인돌|고인돌]] 16기가 있으며 남쪽으로 500여 m 거리에 바다가 있다. 20여 년 전 도로 확장 때 교란되어 군집 형태를 파악할 수 없으나 군집 방향은 북동-남서로 추정되며, 이 중 3기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이중개석|겹 뚜껑돌(二重上石)]] 형태로 1호는 4매의 [[받침돌|받침돌(支石)]]이 약간 밀린 상태로 드러나 있고, 2호 역시 4매의 깬돌(割石)로 받침돌을 이루었으며 동·서 양끝은 덮개돌 밑에 소형 깬돌을 포개어 놓아 보강하였다. 3호는 판돌(板石)로 이루어진 [[벽석|벽석]]이 정연하게 드러나 있는데 이 가운데 북쪽 판돌은 결실되었다. 또한 밭 속의 교란된 것 중에서도 겹뚜껑돌 형태가 3기가 있다. 덮개돌의 장축은 북동-남서 방향이 대부분이고 동서 방향도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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