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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월암리 고인돌군[務安 月巖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월암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무안 월암리 고인돌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월암리 362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움무덤]], [[슴베 간 돌살촉]], [[청동]], [[곱은옥]]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정영희 }} ==설명==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월암리 362 일원에 위치한다. 아파트 건설부지에 포함되어 1991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 4기와 그 밖에 철기 시대의 [[토광묘|움무덤(土壙墓)]]이 확인되었다. 월암리는 북쪽과 서쪽의 해발 40m 정도의 낮은 야산이 흘러내리고 남쪽은 경작지인데, [[고인돌|고인돌]]은 밭 경작지 가운데에 위치한다. 1호 고인돌은 장축 방향이 남북으로 놓여 있으며, 2호는 남북에 가까운 남서-북동 방향이고 3·4호는 파괴되어 알 수 없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판돌(板石)을 세워 만든 [[돌널형무덤방|돌널형(石棺形)]]과 무덤방을 만들지 않고 회백색 점토를 깔고 판돌을 덮은 형식이 있다. 1호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평면 타원형으로 길이 4.74m, 너비 3.12m, 두께 0.94m이고 무게 14톤이다. 하부 구조(下部構造)는 받침돌(支石) 1매가 확인되고 무덤방의 서쪽 외곽에 강돌(川石)이 무질서하게 깔려있다. 무덤방은 길이 1.12m, 너비 0.5m, 두께 0.5m로 판돌과 강돌을 이용하여 축조한 [[돌덧널형무덤방|돌덧널형(石槨形)]]이며, 바닥은 회백색 점토로 다짐 처리하였다. 2호 덮개돌은 길이 2.76m, 너비 1.9m, 두께 0.7m, 무게 5.7톤이다. 하부에는 길이 0.62~0.83m, 너비 0.32~0.38m 두께 0.1~0.14m의 판돌 2매와 둥근 석재 1매가 놓여 있고 그 사이에 작은 깬돌(割石)들이 무질서하게 깔려 있다. 무덤방은 별도의 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바닥에 회백색 점토와 그 아래에 지름 1.2m의 황갈색점토층이 확인된다. 유물은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숫돌(砥石), [[청동|청동]] 편, 천하석제(天河石製) [[곱은옥|곱은옥(曲玉)]] 등이 있다. 특히 곱은옥은 반달 모양(半月形)으로 [[세형동검|세형동검]] 관련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들과 유사하다. 형태상으로는 [[송국리유적|부여 송국리 유적]]의 [[석관묘|돌널무덤(石棺墓)]] 출토품과 [[초포리유적|함평 초포리 유적]]의 [[적석목관묘|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 출토품과 비슷하다. 1호 고인돌의 북벽과 동벽을 파괴하고 움무덤이 조성되었는데, 이와 같이 고인돌의 하부를 일부 파괴하고 후대의 움무덤이 설치된 것은 움무덤 사용 시기에 이미 고인돌이 무덤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예는 [[곡성연화리고인돌|곡성 연화리 고인돌]]에서도 발견되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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