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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원북리 유적(論山 院北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원북리 유적 | 이칭별칭=논산 원북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 860-1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돌널무덤]], [[움무덤]], [[독무덤]], [[집자리]], [[구덩이]], [[소성 유구]],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식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공민규 }} ==설명==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 860-1 일원에 위치한다. 논산 지방 산업 단지의 조성으로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2001년 발굴 조사하였다. 가~라의 4개 지구로 구분되는데, 가지구에서는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6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3기, [[독무덤|독무덤(甕棺墓)]] 1기, 다지구에서는 [[집자리|집자리]], [[구덩이|구덩이(竪穴)]], [[소성유구|소성 유구(燒成遺構)]]와 그 밖에 철기 시대 무덤(古墳), 삼국 시대 취락(聚落), 고려 시대 무덤 등 다양한 생활·매장 유구가 확인되었다. 구릉의 정상부에 입지하고 있다.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에 3~4기씩 떼를 이루어 분포하는데 평면 원형계로 내부 바닥면에 타원형 구덩이를 갖춘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지름 2.14~6.78m, 1.1~6.3m, 깊이 0.1~0.73m로 중·소형급이다. 내부 시설로는 3·16·25호에서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며, 2·19호에서는 [[무시설식화덕자리|무시설식 화덕 자리(無施設式爐址)]]가 마련되었다. 기둥구멍은 중앙의 타원형 구덩이를 중심으로 한 4주식의 배치가 3·16·25호에서 확인되었다. 구덩이는 대부분 원형 또는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단면 형태는 원통형과 복주머니형으로 구분되는데, 원통형이 다수이다. 지름 1.47~3.82m, 1.3~3.57m, 깊이 0.31~1.43m이며 단면 형태가 복주머니형인 구덩이의 크기가 비교적 크다. 불탄 유구는 구덩이와 같이 집자리 주위에 분포한다.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크기는 1.21~1.82m, 0.78~1.8m, 깊이 0.18~0.38m이다. 야외에서 토기를 제작하던 가마(窯) 또는 집단 공동의 취사 시설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송국리식 집자리에서 [[화덕자리|화덕자리]] 및 취사 시설 등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돌널무덤은 북쪽인 가지구에 떼를 이루며 조영되었다. 돌널의 크기는 1호 길이 1.3m, 너비 0.4m, 4호 길이 1.86m, 너비 0.66m, 6호 길이 1.8m, 너비 0.69m이다. 무덤방(墓室)은 짧은 벽은 1~2매, 긴 벽은 수매의 판돌板石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토기 편을 깐 1호를 제외하고는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출토 유물은 집자리 및 구덩이에서 외반 구연(外反口緣)의 [[송국리식토기|송국리식 토기]]를 비롯하여,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등의 토기류가 있다. 석기류는 [[삼각형돌칼|삼각 돌칼]], [[돌살촉|돌살촉(石鏃)]], [[간돌검|간 돌검]],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등이 출토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치는 다-26호 구덩이 258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785년), 다-68호 구덩이 282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55년), 다-2호 소성 유구 273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70년)이다. 원북리 유적은 생활 공간과 매장 공간이 분리된 취락을 보여주는 양호한 자료이다. 또한, 구릉상에 이웃한 각 집단은 집단 사이에 마련된 공지(空地)를 취락 공동의 장으로 연결되며, 개별 집단 내에서도 공동의 공간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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