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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우물(井)}}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우물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유적=논산 마전리 유적, 대구 동천동 유적 | 키워드=[[농업]], [[구덩이]]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형원 }} ==설명== [[우물|우물]]은 물을 얻기 위해서 땅을 파서 물을 괴게 만든 시설을 말하며 마을의 구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식용수나 [[농경|농업]] 용수 등 물의 안정적인 확보는 마을의 입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데, 선사-고대인들이 하천변에 마을을 형성했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우물의 이러한 중요성에도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적에서 확인된 사례는 많지 않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우물이 발굴된 청동기 시대 유적은 2개소이다. [[논산마전리유적|논산 마전리 유적]]에서 나무로 만든 우물 2기, [[대구동천동유적|대구 동천동 유적]]에서는 돌로 만든 우물 4기가 발굴된 바 있다. 마전리의 우물은 [[구덩이|구덩이]]를 판 후 판재를 벽쪽에 붙여 만든 ‘ᄑ’자 모양과 단면이 둥근 나무 등을 결구하여 쌓아 올려서 ‘井’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동천동의 우물은 ‘U’자 모양으로 땅을 파낸 후 내부를 돌로 조잡하게 쌓아 올렸다. 두 유적의 우물은 식용수로 이용되었을 가능성과 함께 논 경작지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관개용(灌漑用)의 집수 및 저수 시설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마전리 유적의 우물에서는 새 모양 목제품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농경의례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시사한다. 청동기 시대 이후의 [[원삼국시대|원삼국 시대]]에도 우물이 일부 발굴된 사례가 있지만 드문 편이다. [[삼국시대|삼국 시대]]부터는 나무나 돌로 만든 우물이 정형화된 형태로 확인되는데, 4-5세기 보다는 6-7세기에 해당하는 자료가 많다. 이와 같은 발굴 상황을 고려할 때, 청동기 시대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시기부터 나무나 돌로 만든 우물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며 향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우물이 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저지대 또는 구릉과 평지가 만나는 지점에 입지하는 구덩이 중에 일부는 우물도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전리나 동천동 우물의 경우에도 목재의 결구나 돌이 확인되지 않았다면, 우물로 인지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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