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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용두리 유적(牙山 龍頭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용두리 유적 | 이칭별칭=아산 용두리 유적, 아산 용두리 부리기 유적, 아산 용두리 진터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용두리 산 41-1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도랑]], [[독무덤]], [[역삼동 유형]], [[송국리식 집자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창호·나건주 }} ==설명==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용두리 산 41-1 일원에 위치한다. 탕정 제2 일반 지방 산업 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 중 1지점이 용두리 부리기 유적, 2지점이 용두리 진터 유적에 해당한다. 유적의 동쪽으로 1㎞ 이내에 [[아산명암리밖지므레유적|명암리 밖지므레 유적]]이 분포하며 용두리 산골·명암리 유적 등 여러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이 조사되었다. 유적은 영인산 산지의 동쪽 정상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나온 구릉 지대에 자리한다. 주변으로 용두천과 곡교천이 가까운 거리에 두 하천이 위치한다. 이와 같이 주변에 비교적 큰 두 개의 하천이 자리하고, 그 주변으로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북서쪽으로는 연암산을 중심으로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있어 청동기 시대 마을이 입지하기에 유리한 자연지리적 조건을 갖주고 있다. 유적의 조사 결과, 용두리 부리기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21기, [[구덩이|구덩이]] 7기, [[구|도랑(溝)]] 2기 등이 확인되었다. 용두리 진터 유적은 집자리 49기, 구덩이 20기, [[독무덤|독무덤]] 2기가 조사 결과 확인되었다.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는 대부분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입지하며, 평면 형태에 따라 (세)장방형의 [[역삼동식집자리|역삼동 유형]]과 평면 원형 또는 말각 방형의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으로 구분된다. 부리기 유적에서 조사된 (세)장방형 집자리는 구릉의 정상부에서는 밀집 분포하며 사면부에서는 둥글게 배치되어 있다. 주변으로는 구덩이가 자리한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능선의 말단부에 분포하는데 중앙부 공지를 두고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세)장방형 집자리는 모두 11기로 내부에는 무시설식 또는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 화덕 자리(土壙形爐址)]]와 기둥 구멍, 구덩이 등이 시설되었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모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타원형 구덩이 주변에서 미완성 석기들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석기 제작과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대형 집자리인 가-1-1호, 가-2-6·7호는 타원형 구덩이를 외곽으로 4개의 기둥 구멍이 설치되어 있다. 가-2-7호에서는 측벽과 맞닿아서 2개의 기둥 구멍이 확인되는데, 출입 시설로 추정된다. 진터 유적의 (세)장방형 집자리는 능선 정상 가까이에 형성된 정상부 사면과 그 아래의 완경사면 지대에 분포한다. 집자리는 크게 3곳에서 군집을 이루어 분포하는데, 북동쪽 정상부를 기점으로 하여 북서쪽, 남서쪽, 남동쪽으로 갈라진 능선 3곳의 남쪽 사면 일대에 군집을 이룬다. 북동쪽 정상부의 평탄면에는 6호 집자리가 단독으로 위치하며, 다른 집자리는 남서쪽 사면과 남동쪽 사면에 분포한다. (세)장방형 집자리 중 가장 큰 것은 장축 길이가 19m 이상인 6·11·20호이며, 11호는 유실되었음에도 잔존 길이가 20.19m이다. 장축이 온전하게 남겨진 20호는 길이 19.73m, 잔존 너비 2.18m, 깊이 0.72m이다. 6호는 구릉 지대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로 여러 능선이 교차하는 중심지인 북쪽 중앙부의 정상부 평탄면에 위치한다. 11호는 남동쪽 능선에 군집된 집자리군 안에 위치하며, 20호는 남서쪽에 군집된 집자리군 안에 위치한다. 6호에서는 7기의 화덕이 확인되며 양쪽 긴 벽 중앙부에서는 8기의 저장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11호도 중복과 유실이 심하지만 6기의 [[화덕자리|화덕 자리]]가 확인되며. 20호에서도 7기가 설치되었다. 규모가 작은 집자리에서는 1~2기의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대형 집자리는 150~21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분포한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모두 24기이다. 대체로 평면 방형이거나 원형에 가깝지만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편이며, 방형과 원형이 섞여 있는 형태이다. 29·35·40호는 평면 방형이며, 34·43·44·45·46호는 평면 원형으로 분류된다. 28·29·31·33·40호 집자리는 모두 장방형 집자리를 파괴하고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어 장방형 집자리보다 시기적으로 후행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분포 양상은 가지점의 경우 장방형 집자리와 동일 공간에 분포하며 장방형 집자리가 분포하지 않는 가지점 남서쪽 일대와 나지점에서도 다수 분포한다. 유물은 (세)장방형 집자리에서는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口脣刻目文)]],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민무늬의 아가리를 지닌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모양 토기(壺形土器)]], 완형 토기(盌形土器) 등의 토기류와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 [[슴베없는돌살촉|슴베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 [[턱슴베돌살촉|턱 슴베 돌살촉(二段莖式石鏃)]], [[배모양돌칼|배모양 돌칼]], [[양날돌도끼|양날돌도끼]], [[돌대팻날|돌대팻날]], [[숫돌|숫돌]], [[갈판|갈판]] 등이 확인되었으며, 토제 [[가락바퀴|가락바퀴]]도 다수 출토되었다. 송국리식 집자리에서는 바리 모양(鉢形)과 항아리 모양(壺形)의 [[민무늬토기|민무늬토기]], 완형 토기, 굽다리의 다리 편 등의 민무늬 토기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등의 토기류와 [[간돌검|간돌검]], 턱 슴베 돌살촉, [[버들잎모양돌살촉|버들잎 모양 돌살촉(柳葉形石鏃)]], [[통슴베돌살촉|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양날 돌도끼, 돌대팻날, 갈판, [[돌망치|돌망치]]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부리기 유적의 경우 역삼동 유형 집자리에서는 상징 [[의례구|의례구]]와 [[수렵구|수렵구]], [[어로구|어로구]], [[목재가공구|목재 가공구]]가 출토되는 반면에 송국리식 집자리에서는 [[수확구|수확구]], [[벌채구|벌채구]], [[식량처리구|식량 처리구]], [[방직구|방직구]]의 출토 빈도가 높아 특징적이다. 구덩이는 평면 형태에 따라 방형, 타원형, 부정형 등으로 구분된다. 진터 유적 18·19호는 연구자에 따라 수렵용 함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부정형의 진터 유적 9호에서는 내부에서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 취락에서 확인되는 구덩이의 경우 화덕이 설치되는 경우가 빈번한 편인데, 유적 내에서 9호 외에는 확인되지 않는다. 내부에서는 항아리 모양 토기, 깊은 바리 토기, 바리 토기, 얕은 바리 토기, 완형 토기 등의 민무늬 토기와 함께 송국리식의 [[독모양토기|독 모양 토기]]도 일부 출토되었다. 반면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는 출토되지 않았다. 5호 구덩이에서는 턱 슴베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2기의 독무덤은 가지점 남서쪽 말단에 위치하는 구릉의 남사면에 5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분포한다. 13호 구덩이도 서쪽 인근의 동일 등고선상에 위치하는데 독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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