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600-2041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600-2041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오동식 토기(五洞式土器)}}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오동식 토기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유적=나선 굴포리 유적, 회령 오동 유적 | 키워드=[[붉은 간 토기]], [[갈색 간 토기]], [[검은 간 토기]], [[겹아가리 토기]], [[마르가리톱카 문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재윤 }} ==설명== 오동식 토기는 [[회령오동유적|회령 오동 유적]]의 청동기 시대층에서 나온 것을 일컫는다. 8기의 [[집자리|집자리]]가 확인되었는데, 철기 시대 6호를 제외하고는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구이다. 문화층에서는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유물도 발견되었다. 토기를 제외하고도 흑요석으로 제작된 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매부리형 석기 및 [[곰배괭이|곰배괭이]] 뿐만 아니라 콩·팥·기장 등과 사람·새·짐승의 뼈화석 등 다양한 자료가 확인되었다. 오동 유적에서 보고된 토기는 갈색 토기, 채색 토기, 간 토기인데, 이 중에서 채색 토기는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赤色磨硏土器)]], [[갈색간토기|갈색 간 토기(褐色磨硏土器)]]를 일컫는다. 그런데 범의구석 보고서에서 오동 유적의 토기 가운데 5호에는 [[검은간토기|검은 간 토기]]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8호에서는 갈색 토기, 1호와 2호에서는 붉은 간 토기와 갈색 토기, 4호에서는 갈색 토기가 출토되어서 집자리 마다 주요 토기의 종류가 약간씩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갈색 간 토기 중에는 입술 부위를 덧띠로 붙이고 그 위 새김 문양이 남아 있는 토기도 있다. 또한 토기 입술 아래에 구멍무늬 혹은 입술 끝에 톱날처럼 새긴 문양도 있다. 토기의 높이와 바닥 지름의 비율이 매우 커서 불안정해 보이는 생김새도 있다. 붉은 간 토기는 대접, 보시기 등 낮은 생김새의 토기가 많다. 이들 토기의 생김새는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 보시기, 대접, 잔 등이 있다. 오동식 토기가 출토되는 집자리는 중복 관계와 토기의 출토 양상에 따라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기는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와 붉은 간 토기가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1·2·7·8호이다. 2기는 입술 부위가 두겹으로 처리된 갈색 토기와 대형 토기가 4호에서 집중 출토된다. 이들 토기는 [[나선굴포리유적|서포항 유적]]의 청동기 시대층과 연해주의 [[마르가리톱카문화|마르가리톱카 문화(Маргаритовская культура)]]에서 출토되는 것과 유사점이 많다. 북한에서는 오동 유적의 1문화층과 2문화층은 기원전 2000년기에 해당하고, 3문화층은 기원전 1000년기 초로 보았다. 그러나 이웃한 두만강 유역과 연해주의 자료가 증가함에 따라서 이와 비교해 볼 수 있다. 두만강 내륙의 [[싱청문화|흥성 문화(興城文化)]]와 연해주의 마르가리톱카 문화와 비교해 볼 때 오동식 토기도 3500~3000년 전에 존재했을 것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개념정보
(
원본 보기
)
600-2041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