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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예당리 유적(寶城 禮堂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예당리 유적 | 이칭별칭=보성 예당리 유적, 보성 예당리 호동 고인돌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 563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고인돌]], [[송국리식 집자리]], [[집자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조진선 }} ==설명==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 563 일원에 위치한다. 목포-광양 간 고속화도로의 보성-벌교 구간에 포함되어 1996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예당리 호동마을 앞 동쪽에 호동 고인돌 가군, 서쪽에 호동 고인돌 나군이 있다. 호동 고인돌 가군은 마을 동쪽의 경사지에 8기가 동서 방향으로 열 지어 있었다. 덮개돌(上石)은 무게 5톤 내외로 비교적 소형이다. 하부 시설(下部施設)은 무덤방(石槨)을 만들고 그 주위에 약간의 묘역 시설(墓域施設)을 부가하였다. 바닥은 5호 고인돌의 무덤방만 작은 판돌(板石)을 전면에 깔았고 나머지는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뚜껑돌(蓋石)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돌검|돌검]], [[돌살촉|돌살촉]], [[돌끌|돌끌(石鑿)]],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호동 고인돌 나군은 마을 앞 밭에 있었는데 8기의 [[고인돌|고인돌]]이 등고선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열 지어 있었다. 덮개돌은 5톤 내외의 소형이 많으며 가장 큰 8호 고인돌은 10톤 정도이다. 1~4·7호 고인돌은 무덤방을 갖추고 있었지만 5·6·8호 고인돌은 받침돌(支石)만 둘러져 있었다. 고인돌 주변에서 덮개돌이 없이 확인된 무덤방 5기와 소형 무덤방 1기가 추가로 조사되었다. 무덤방은 동서 방향으로 열 지어 있으며 바깥쪽에 약간의 묘역 시설을 부가하였다. 뚜껑돌은 대부분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돌검, 돌살촉, [[돌도끼|돌도끼(石斧)]], 돌끌, 민무늬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 나군 주변에서 평면 원형의 [[집자리|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는데,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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