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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영복리 고인돌군[康津 永福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영복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강진 영복리 고인돌군, 강진 영복리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영복리 10-1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덮개식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제의]]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영문 }} ==설명==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영복리 10-1 일원에 위치한다. 강진-마량 간 국도 확장 공사 지역으로 1982년 국립광주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고인돌]]은 구릉상과 계곡 평지의 평탄면에 각각 A지구 17기, B지구 2기, C지구 17기가 분포하고 있는데 이 중 일부만 조사하여 모두 12기의 무덤방(墓室)이 확인되었다. 가군 고인돌은 구릉의 정상 평탄면에 크기가 가장 큰 9호를 중심으로 한쪽을 에워싸듯이 배치되어 있다. 9호는 길이 4m, 너비 3.5m, 두께 1m 정도의 덮개돌(上石)과 그 밑에 둥근 괴석형(塊石形) 받침돌(支石) 4매가 고이고 있는 대표적인 [[기반식고인돌|바둑판식(碁盤式) 고인돌]]이다. 나머지 조사된 고인돌의 무덤방 10기 중 바둑판식 고인돌은 1기(1호)뿐이며, 나머지는 [[개석식고인돌|덮개식 고인돌]]이다. 무덤방의 배치는 구릉의 방향과 직교되는 남북으로 3열을 이루고 있다. 구조는 크게 두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깬돌(割石)로 3~4단의 벽석(壁石)을 쌓고 바닥에 잔자갈을 전면에 깐 [[돌덧널형|돌덧널형(石槨形)]]인데, 이러한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다른 하나는 덮개돌 아래에 깬돌 14매를 방형으로 돌려놓고 바닥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는 [[돌두름형|돌 두름형(圍石形)]]으로 길이 1.1m, 너비 0.9m, 깊이 0.3m인 5호가 유일한 예이다. 출토 유물은 다량의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과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편, [[검은간토기|검은 간 토기(黑塗磨硏土器)]] 편 등의 토기류가 주를 이루며,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끌|돌끌(石鑿)]],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숫돌|숫돌(砥石)]],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갈돌|갈돌(耉石棒)]] 등의 석기류와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가락바퀴]], 흙으로 만든 그물추가 있다. 유물들은 모두 무덤방 벽석이나 그 주변에서 출토된 것들로 무덤방 안의 껴묻거리로 출토된 것은 없다. 유물들도 완형보다는 파편이나 일부 깨진 것이 대부분이다. 유물은 중심에 있는 대형 고인돌 주변에서 집중 출토되고 있어 당시 고인돌 축조 시의 [[제의|제의(祭儀)]]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가군 고인돌군은 상징적인 기념 고인돌 1기와 무덤 고인돌 수 기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고인돌군이다. 고인돌은 조사 후 도로 공사로 인멸되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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