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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연반리 고인돌군[谷城 蓮盤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연반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곡성 연반리 고인돌군, 곡성 연반리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연반리 914-4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돌 두름식 고인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신상효 }} ==설명==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연반리 914-4 일원에 위치한다. 광주-순천 간 호남 고속 도로 확장 공사에 포함되어 1993년 국립광주박물관이 가군, 목포대학교박물관이 다군을 각각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고속 도로와 국도27호선이 백천교와 자암교를 통해 교차하는 지역으로 계류와 양 도로 사이에 형성된 삼각주와 같은 곳이다. 가군 [[고인돌|고인돌]] 4기 중 1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3기는 파괴되거나 이동되었다. 1호 덮개돌(上石)은 동서 장축 방향으로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까우며 길이 2.5m, 너비 2.2m, 두께 0.9m이다. 지상에 5매의 받침돌(支石)이 드러나 있고 무덤방(墓室) 등 별다른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 [[위석식고인돌|돌 두름식(圍石式) 고인돌]]이라 할 수 있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돌도끼|돌도끼(石斧)]], 원반형 토제품으로, 돌도끼는 남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받침돌 밑에서 출토되고 나머지는 고인돌 주위에서 출토되었다. 다군 고인돌은 3기로 1호를 제외하고는 하부 구조(下部構造)가 있으며, 석곡천의 흐름 방향과 나란하게 남북 1열을 이루고 있다. 2호 덮개돌은 평면 형태 장방형으로 길이 4.1m, 너비 3.7m, 두께 2.1m, 무게 55톤으로 대형이며 윗면에는 알 구멍(性穴)이 있다. 7매의 받침돌이 ‘C’자 모양으로 놓여져 있으나 무덤방 등 다른 시설이 없는 돌 두름식 고인돌이다. 3호 덮개돌은 평면 장방형이며 길이 2.5m, 너비 2m, 두께 1.08m이며 무게는 7톤이다. 받침돌은 1매가 확인되며, 그 아래 지하식의 돌덧널(石槨) 무덤방이 있다. 무덤방은 길이 1.68m, 너비 0.47m, 깊이 0.2m이며 긴 벽은 강돌(川石)을 눕혀 쌓고 짧은 벽은 판돌(板石) 1매를 세워 축조하였고,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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