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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어진동 유적(世宗 어진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어진동 유적 | 이칭별칭=세종 어진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 650·735(舊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가락동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손준호 }} ==설명== 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 650·735(舊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전월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해발 35~60m의 구릉 정상부 평탄면과 사면부에 자리하고 있다. 발굴은 2007년 12월부터 2008년 8월까지 28·29·30·34지점에 대한 1차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2009년 4월부터 6월까지 28지점에 대한 추가 2차 조사가 실시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유구는 28지점에서 [[집자리|집자리]] 55기와 작은 [[구덩이|구덩이]] 2기, 29지점에서 집자리 12기, 30지점에서 집자리 9기와 작은 구덩이 1기, 34지점에서 집자리 6기가 조사되었다. 유구의 분포는 주로 구릉 정상부 능선을 따라 확인되지만, 최대 밀집 지역인 28지점에서는 일부 사면부에도 입지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구분되는데, 전체 집자리의 절반 정도가 장방형에 해당한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은 돌 두름식 [[화덕자리|화덕 자리]]나 무시설식 혹은 구덩식 화덕 자리,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기둥 받침돌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중복 축조 사례도 다수 관찰되는데, 이를 통하여 집자리의 소형화, 화덕과 기둥 받침돌이 사라지는 경향성 등을 살필 수 있다. 유물은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골아가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 토기]],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 [[겹아가리톱니무늬토기|겹아가리 톱니무늬 토기]], [[삼각무늬토기|삼각무늬 토기]], [[굽달린작은항아리|굽 달린 작은 항아리]],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 [[턱슴베간돌살촉|턱슴베 간 돌살촉]], [[슴베없는간돌살촉|슴베 없는 간 돌살촉]], [[배모양돌칼|배 모양 돌칼]] 등이 출토되었으며, 34지점 KC-001호 집자리에서는 불탄 쌀 400g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유물의 출토 양상이나 집자리의 모양 등은 청동기 시대 가락동 유형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 KC-049호 집자리에서 출토된 [[턱자귀|턱자귀]]는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확인되는 형식이기 때문에, 유적이 장기간 유지되었음을 나타낸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 등을 참고할 때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이른 시기에 점유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소형화된 집자리와 턱자귀의 출토 사례 등을 볼때 그 이후 시기까지 존속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즉, 어진동 유적은 최대 규모의 [[가락동유형|가락동 유형]] 취락인 동시에 장기 점유 취락으로서, 해당 유형의 특징과 변화상은 물론 동시기 혹은 후속 시기 다른 청동기 시대 유형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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