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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양덕리 고인돌[陰城 良德里支石墓]}}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양덕리 고인돌 | 이칭별칭=음성 양덕리 고인돌, 음성 양덕리 지석묘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2리 양지울 마을 | 성격=고인돌 | 키워드=[[바둑판식 고인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최범식 }} ==설명==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2리 양지울 마을에 위치한다. 1986년 중부 고속 도로 건설 발굴 조사의 일환으로 [[고인돌|고인돌]] 1기를 조사하였으며, 이후 용성리 760에 위치한 중부 고속 도로 음성휴게소 내 유물 전시관 야외 전시장으로 이전하여 전시되고 있다. 원래 ‘바위베기밭’이라고 불리는 마을 중심 지역의 밭에 자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거북바위’라고 부르며 신성시 여겼으며, 풍요석의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반성 화강암이며 길이 3.1m, 너비 2.9m, 두께 1.4m이다. [[받침돌|받침돌(支石)]]은 남쪽을 제외한 세 면은 길이가 1m 가량인 위를 평평하게 다듬은 큰 [[깬돌|깬돌(割石)]]을 놓고, 남쪽은 [[판돌|판돌(板石)]]을 4겹 쌓아 받힌 [[기반식고인돌|바둑판식 고인돌(碁盤式支石墓)]]이다. 받침돌 내부가 [[무덤방|무덤방(墓室)]]의 역할을 하는 지상식으로, 복원된 크기는 길이 1.4m, 너비 0.7m, 두께 0.5m이다. 묻힌 사람의 머리 방향(頭向)은 [[베갯돌|베갯돌(頭枕石)]]의 출토 위치로 볼 때 북쪽인 것으로 추정된다. 매장 방법은 먼저 무덤방의 가장 아래쪽에 0.2~0.3m의 깬 돌과 판돌을 깔고 그 위에 0.05m 정도의 고운 흙을 쌓은 다음 주검(屍身)을 놓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고인돌 내부에서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으나, 주변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말 안장 모양의 [[갈판|갈판(碾石)]], 석기 편 등이 확인되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86년 04월 19일~1986년 04월 23일 || 음성 양덕리 유적발굴조사보고 || 1986 || 충북대학교박물관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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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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