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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압촌동 고인돌군[光州 鴨村洞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압촌동 고인돌군 | 이칭별칭=광주 압촌동 고인돌군, 광주 압촌동 지석묘군, 광주 개동 고인돌 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503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수민 }} ==설명==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503 일원에 위치한다. 광주 서창-나주 남평 간 지방 도로 확장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02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당시에는 개동 고인돌 나군으로 파악하고 조사되었지만 이전 지표 조사의 설명과 조사 보고서를 비교해본 결과 압촌동 고인돌군으로 판단된다. 조사 지역은 경작과 무덤들이 조영되면서 지형이 훼손되었고 양계장이 들어서면서 9호 [[고인돌|고인돌]]의 덮개돌(上石) 일부가 이동되었다. 유적 주변으로는 저평한 구릉과 평지가 발달해 있고,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천과 대촌천이 흐른다. 이 일대에는 고인돌 9기가 남북 방향으로 열을 이루며 분포하는데, 이 중 9호 고인돌만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9호 고인돌의 덮개돌을 들어내고 그 아래쪽을 조사하였지만 하부 구조(下部構造)는 확인되지 않았다. 덮개돌에는 여러 곳에 채석한 흔적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후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1.7m, 너비 1.4m, 높이 0.9m이다. 고인돌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갈돌|갈돌(碾石)]],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豆形土器)]] 편,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바닥 편이 출토되었다. 5호 고인돌의 덮개돌 주변에서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가 출토되었다. 광주 개동 고인돌 나군에서는 유적의 성격을 파악할 만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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