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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아동리 유적(群山 阿東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아동리 유적 | 이칭별칭=군산 아동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아동리 699-5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독무덤]], [[돌널무덤]], [[통자루 간 돌검]], [[돌살촉]]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민석 }} ==설명==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아동리 699-5 일원에 위치한다. 토석 채취장 개발에 따라 아동리와 당북리 지역에 대해 2000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옹관묘|독무덤(甕棺墓)]] 1기, [[석관묘|돌널무덤(石棺墓)]] 5기와 그 밖에 원삼국 시대 [[집자리|집자리]] 3기, 조선 시대 회곽묘(灰槨墓) 1기가 확인되었다. 오성산 남서쪽에 발달한 구릉 지대로서 남북 방향으로 뻗은 지류의 북쪽 끝자락에 입지한다. 독무덤은 능선의 정상부에 위치하는데 풍화 암반층을 파내어 마련된 [[묘실|무덤 구덩이(墓壙)]]에 약 45° 경사지게 안치되었다. 무덤 구덩이는 길이 0.29m, 깊이 0.16m이다. 독널과 무덤 구덩이 사이에는 소형 깬돌(割石)을 채웠다. 독널은 전형적인 [[송국리식토기|송국리식 토기]]로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다. 독널의 높이는 0.55m이며, 몸통 최대 지름은 0.39m이다. 돌널무덤은 독무덤의 서쪽 지역에서 반경 10m 내외에 5기가 배치되었다. 풍화 암반층을 파내고 무덤 구덩이를 마련한 다음 그 안에 판돌(板石) 모양의 깬돌을 서로 잇대어 벽을 만든 장방형의 돌널이 있다. 유구의 장축 방향은 중앙에 위치한 1호 돌널무덤을 감싸듯이 배치되어 유구별로 얼마간 차이가 있다. 가장 잘 남아 있는 1호는 모두 5매의 깬돌로 된 뚜껑돌(蓋石)이 마련되었다. 길이 1.37m, 너비 0.34m, 깊이 0.46m이며 무덤 구덩이는 2단이다. 판돌 모양 깬돌을 세우거나 뉘어서 [[벽석|벽석]]을 마련한 다음 벽석의 높이가 맞지 않는 부분은 1~3단의 깬돌을 더 올려 놓았으며 벽석과 벽석 사이에는 소형 깬돌 편으로 채웠다. 바닥면에는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았다. 3호는 유일하게 바닥에 판돌형 깬돌을 깔았다. 4호는 길이 0.48m, 너비 0.22m, 깊이 0.26m로 가장 작은 크기이다. 1호에서는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 버들잎 모양 [[돌살촉|돌살촉]] 1점이 출토되었다. 나머지 돌널무덤은 유실되었으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독널을 기울여 안치(斜置)한 점을 제외한 독널의 입지와 속성은 금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연접된 서천 오석리 94-1호 독무덤과 밀접한 관련성을 담고 있으며, 기울여 안치한 점은 익산 율촌리 5호분 둘레 도랑 내에서 출토된 독무덤과 상통한다. 아동리 유적의 독무덤과 돌널무덤은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초기 형식의 속성을 강하게 담고 있는 독무덤은 고인돌이 희박하게 분포된 군산 지역 청동기 시대 무덤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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