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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연리 생림 유적(山淸 新淵里生林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신연리 생림 유적 | 이칭별칭=산청 신연리 생림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신연리 281-30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돌널무덤]], [[움무덤]], [[집자리]], [[구덩이]], [[도랑]], [[송국리식 집자리]],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간 돌검]], [[간 돌살촉]], [[반달 돌칼]], [[돌대팻날]], [[돌끌]], [[숫돌]], [[가락바퀴]], [[그물추]], [[달도끼]], [[구멍무늬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설명==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신연리 281-30에 위치한다. 하천 정비 사업에 앞서 2014~2015년 조사하여,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2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2기, [[집자리|집자리]] 48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高狀建物址)]] 1기, [[구덩이|구덩이]] 31기, [[구|도랑(溝)]] 4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남강 상류의 충적지에 입지하며, 북쪽에는 [[산청갈전리.평촌리.하촌리유적|산청 하촌리와 갈전리 유적]]이, 남쪽에는 [[산청매촌리유적|매촌리 유적]]이 있다. 집자리의 방형이 가장 많고, 그 외에 장방형, 원형, 타원형도 확인된다. 규모는 15.9㎡ 이하의 소형 14기, 16~41㎡ 미만의 중형 25기, 41㎡ 이상의 대형 3기로 구분된다.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의 요소인 타원형 구덩이와 그 바깥 양쪽에 기둥 구멍이 설치된 것과 기둥 구멍 없이 타원형 구덩이만 설치된 것이 있으며, 아무런 시설이 없는 것도 8기가 있다. 타원형 구덩이 가장자리와 바닥에는 강돌(川石)을 설치하거나(29호) 깬돌(割石)을 깐 것(36호)도 있다. 이외에 집자리 내부에서는 [[화덕자리|화덕 자리]]와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도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간토기항아리|붉은 간 토기 항아리]] 등이 있다. 바리 토기에는 [[새김가로줄무늬|새김 가로줄무늬(橫沈線文)]]나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가 새겨진 것이 있으며, 항아리에는 손잡이(把手)가 달린 것도 있다. 구멍 뚫린 바닥도 여러 점 출토되었다. 7호 집자리에서 많은 수량의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특히 높이 71.5㎝의 대형 항아리 모양 토기는 저장 용기로 판단된다. 석기 및 기타 도구로는 [[간돌검|간 돌검]], [[간돌살촉|간 돌살촉]],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각종 미완성 석기, [[숫돌|숫돌(砥石)]], 토제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 있다. 어로 활동을 보여주는 토제 [[그물추|그물추]]도 있으며, 13호에서는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가 두 점 출토되었다. 타원형 구덩이와 그 주변에서는 각종 석기와 미완성 석기 및 석재(石材)가 출토되어 그곳을 중심으로 석기 제작 활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널무덤(1·2호)은 강돌로 축조하였다. 1호는 긴벽이 교란되었다. 2호는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를 이단으로 축조하였고, 양 짧은 벽은 벽석이 없다. 내부의 토층과 바닥 면에서 나무 뚜껑(木蓋)과 [[나무널|나무널(木棺)]]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양 긴 벽에 있는 강돌은 나무널과 무덤 구덩이 사이의 충전석(充塡石)으로 판단된다. 간 돌검과 간 돌살촉이 나무널과 충전석 사이에 부장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4호는 벽석이 없는 움무덤이다. 4호는 완만한 ‘U’자 모양의 토층을 보이며 붉은 간 토기 항아리는 바닥 면에서 출토되는데 비해 간 돌검과 간 돌살촉은 상부에서 뜬 채로 비스듬하게 출토된 점에서 나무 뚜껑 위에 놓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둥 건물터는 정면 11칸과 측면 1칸의 구조이며 길이 14.4, 너비 2.7m이다. 19개의 기둥 구멍으로 이루어졌으며 기둥 구멍이 확인되지 않은 공간에는 돌이나 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중앙부에 배치된 점에서 일반적인 집자리가 아니라 마을 내에서 특수한 기능을 하였던 공공 건물로 추정된다. 구덩이는 장방형, 원형, 타원형으로 다양하다. 평면 원형에 단면이 ‘U’자 모양 또는 플라스크 모양인 것은 저장 구덩이로 판단된다. 내부에서는 주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며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도 일부 확인되었다. 도랑 4기는 서로 간격을 두고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1호 도랑의 일부가 1호 집자리에 의해 파괴되었다. 집자리와 무덤 및 구덩이 등에서 출토된 유물의 시기는 대부분 [[송국리단계|송국리 단계]]에 속한다. 집자리는 산청 하촌리와 갈전리 유적과 유사하다. 하촌리와 갈전리에서는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가 여러 점 출토되었는데 비해, 신연리 생림 유적은 단 한 점뿐이어서 이 유적들 보다는 시기적으로 다소 늦다고 판단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14년~2015년 || 산청 신연리 생림 유적 || 2017 || 경상문화재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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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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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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