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600-1747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600-1747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신매리 고인돌군[春川 新梅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신매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춘천 신매리 고인돌군, 춘천 신매리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서면 신매1리와 신매2리182, 111, 273, 318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탁자식]], [[알 구멍]]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노혁진 }} ==설명== 강원도 춘천시 서면 신매1리와 신매2리182, 111, 273, 318에 위치한다. 신매1리에서 3기, 신매2리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신매1리의 1호는 탁자식으로 덮개돌(上石)과 긴 벽석이 붕괴되어 있었고 내부는 완전히 교란된 것이다. 덮개돌과 긴 벽석 아래에서는 강돌(川石)과 깬돌(割石)이 남아 있었다. 덮개돌은 장축이 남북이며 길이 3m, 너비 2.1m이다. 2호는 1호로부터 북쪽으로 19m에 위치한다. 덮개돌은 남북 장축에 길이 3.1m, 너비 1.8m로, 탁자식이 완전히 교란된 것이다. 3호는 2호로부터 동북쪽으로 13m에 위치한다. 덮개돌은 길이 3.4m, 너비 1.5m이며 덮개돌 위에 받침돌(支石)로 보이는 길이 1.7m, 너비 1.2m의 괴석(塊石)이 얹혀져 있었다. 탁자식이 완전히 교란된 것으로서 덮개돌 윗면에는 32~33개의 [[알구멍|알 구멍(性穴)]]이 남아 있었다. 이 밖에도 5기 이상의 [[고인돌|고인돌]]이 신매1리 일원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매2리의 1호는 길이 1.6m, 너비 1.2m, 두께 0.5m의 장방형 덮개돌(上石)을 들어 냈지만, 유구나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2호는 1호로부터 서북으로 12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탁자식(卓子式) 고인돌을 중앙에 두고 넓게 돌무지(積石)를 조성하였다. 돌널(石棺)은 남북 장축이며 짧은 벽석의 한 쪽은 사라져 버렸고 다른 한쪽은 판돌(板石) 3매로 막았다. 신매리 일원의 고인돌은 기본적으로 [[탁자식고인돌|탁자식]]에 해당하는데, 돌널부를 둘러싸고 넓은 범위의 돌무지를 조성한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이후, 신매2리 고인돌은 국립춘천박물관이 보존 관리를 위해 야외 정원에 이전·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84년 09월 28일~1984년 09월 28일 || 신매리 지석묘 주거지 발굴보고서 || 1986 || 한림대학교박물관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
원본 보기
)
600-1747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