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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송죽리 의촌 고인돌군[靈光 松竹里儀村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송죽리 의촌 고인돌군 | 이칭별칭=송죽리 의촌 고인돌군, 영광 송죽리 의촌 고인돌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 송죽리1044-8(가군)·1042-12(나)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돌덧널무덤]], [[가마]]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주호 }} ==설명== 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 송죽리1044-8(가군)·1042-12(나) 일원에 위치한다. 영광 대마 산업 단지 조성 사업 부지에 포함되어 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고인돌|고인돌]] 5기를 비롯하여 삼국 시대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 2기와 조선 시대 [[백자가마|백자 가마]] 등이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교란이 심해 가-4호 고인돌은 [[덮개돌|덮개돌(上石)]]만, 가-2호와 가-3호 고인돌은 덮개돌이 이동된 채 [[받침돌|받침돌(支石)]]로 추정되는 석재가 1매씩만 확인되었다. 가-1호, 나-1호 고인돌에서는 하부 구조가 일부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평면 형태가 타원형·방형·말각 방형·삼각형 등으로 다양하다. 가-1호 고인돌에서 조사된 받침돌 2매 중 하나는 지름 0.3m, 깊이 0.23m 정도의 구덩이에 세워진 상태로 확인되어 [[기둥모양받침돌|기둥 모양 받침돌(支石)]]임을 알 수 있다. 가-2호와 가-3호 고인돌에서 확인된 받침돌 역시 길이 1m 이상이어서 기둥 모양 받침돌로 추정된다. 가-1호 고인돌에서는 [[묘역|묘역]]으로 추정되는 하부 구조가 조사되었는데, 작은 석영제 깬돌(割石)이 무질서하게 깔려있고 그 아래에서 판돌(板石) 11매가 확인되었다. 판돌 아래에서 길이 0.39m, 너비 0.32m, 깊이 0.35m의 작은 [[무덤방|무덤방(石室)]]가 확인되었다. 나-1호는 덮개돌이 원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깬돌과 판돌이 각각 2매씩 확인되었지만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는 확인되지 않았고 석재 아래에서 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삼국 시대 유구인 가-1호 돌덧널무덤의 바닥 아래에서 길이 1.24m, 너비 0.52m, 깊이 0.16m 크기의 부정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는데, 반달 돌칼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덮개돌이 대부분 이동되어 정확한 성격을 규명하기 어렵다. 가-1호 고인돌과 유사한 기둥 모양 받침돌을 사용한 고인돌은 영광·고창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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